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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한글 자모에 녹아있는 삶, 詩로 맛보다

2020-03-28

가나다라마바사
언어 소재 시집으로 주목받은 문무학
홀소리·닿소리·사라진 글자까지 55자
시로 표현해 우리글의 아름다움 소개
"글자 속엔 기쁘고도 아픈 삶 들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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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학 지음/ 학이사/ 104쪽/ 1만1천원

"'ㅎ'이 닿소리의/ 맨 끝자리 앉은 것은/ 살면서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희망과 웃음소리의/ 첫소리기 때문이다"(문무학 시 '닿소리 ㅎ')

'희망'이라는 단어와 '하하하' '호호호' 웃음소리, 그러고 보니 그 둘의 공통점은 닿소리(자음) 'ㅎ'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저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 최대한 의연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론 절망감에 휩싸이곤 한다.

희망, 그리고 웃음소리…. 우리가 살면서 끝까지 버리지 말고, 또 잃지 않아야 할 것이란 것을 시(詩)가 된 우리말과 글이 다시 한번 일깨운다.

우리 글인 '한글' 자모를 소재로 시를 쓴 독특한 시집이 최근 발간됐다.

문무학 시인의 이번 신간 시집은 그 제목도 '가나다라마바사'(학이사)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대해 "한글 닿소리 14자, 홑소리 10자, 사라진 자모 4자, 겹닿소리 16자, 겹받침 글자 11자 모두 55자를 시로 써서 '가나다라마바사'란 시의 집, 한 채를 짓게 됐다"고 소개했다.

시집은 제1부 '한글 자모 시로 읽기- 닿소리', 제2부 '홀소리', 제3부 '겹닿소리·겹홀소리', 제4부 '사라진 자모', 제5부 '겹받침 글자의 풍경' 등 총 5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시집은 한글 자모 한 자 한 자에 천착해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정겨운 시들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홀소리 ㅓ'에 관한 시의 주제 단어는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란/ 낱말이/ '어'로 시작되는 것은/ 어어, 하고 놀랄 일/ 많고 많은 세상에/ 달래줄/ 사람은 오직/ 어머니, 그/ 뿐이라서"

'어어' 하고 놀랄 일 많은 지금 이 세상을 달래주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닿소리 ㅊ'도 한편의 시로 멋지게 태어났다.

"'ㅊ'으로 시작되는/ 책에는 차례 있다/ 차례 따라 가고 가면/ 지혜의 성에 닿아/ 참으로 풀리지 않던/ 삶의 의문 풀린다"

'홀소리 -'는 어떻게 시가 됐을까.

"평평한 땅을 본떠 그렇게 편하라고 사람의 아픔 슬픔 그/ 가운데 들어서서 아프고 슬픈 것들을 반반으로 나눈다" 바로, 아픔과 슬픔을 반으로 나누는 '-'였다.

시집을 읽다 보면 너무 익숙해서 대수롭지 않게 봤던 우리글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알던 글자들은 어떻게 시로 표현됐을까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고령에서 태어난 문 시인은 1982년 제38회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지역 안팎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며, 한글과 언어를 다채롭게 변주한 '낱말' '홑' 등 여러 실험적인 시집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가나다라마바사'에서도 그 실험을 이어 한글 자모를 새롭게 들여다보고 시로 태어나게 했다.

문 시인은 "한글 자모를 바라보고, 읽어보고, 써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니까 그 메마르고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기호 속에 우리네 들뜨고 기쁜 삶과 시리고 아픈 삶이 골고루 녹아 있었다"라며 "한글 겨우 아는 것, 오로지 한글 아는 그것만으로 평생을 먹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한글이 너무 고마워서 한글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한글과 관련된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시인은 한글 자모가 패션과 디자인, 그림과 무용,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말 자모를 시로 쓴 것은 보지 못해 아쉬워하던 중 직접 시를 쓰게 됐다고 말한다.

박진임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 시집은 우리말의 자음과 모음이 지닌 소리의 맛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이름을 붙인다. 모든 '음'들이 각자 하나의 세계와 그 나름대로의 우주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시인은 현존하는 자음과 모음만이 아니라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간 소리 또한 채록한다"고 설명한다.

이 해설에 나온 표현처럼 '그 나름대로의 우주를 지닌' 많은 이들이 전염병에 스러져가는 안타깝고도 슬픈 시절, 오랜 부침에도 끝내 살아남은 '한글'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서 새삼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해본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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