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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여고 척화비는 현존 유일 순영척화비…경상감영으로 이전 필요"

2020-04-08

유산답사 블로거 임병기씨
"전국 35기 모두 조사해 확인
고증 거쳐 원위치로 옮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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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원화여고 교정에 세워진 척화비.

"현재 국내 남아 있는 척화비 35기 중 조선시대 지방 최고행정기관인 감영에서 세운 것은 대구 원화여고에 있는 척화비가 유일합니다."

문화유산답사 블로거 임병기씨(64·대구 달서구 상인동)에 따르면 대구시 달서구 원화여고 교정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순영 척화비가 있다. 원화여고 척화비는 <주>금호실업 김영기 사장이 1982년 11월10일 원화여고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머릿돌 부분이 훼손되어 비문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다.

순영 척화비는 순영에서 세운 척화비로, 순영은 감영의 별칭이다. 척화비는 서양 오랑캐와의 화친을 배척하겠다는 조선 조정의 의지를 천명한 비로,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에 의해 우리나라 전역에 일제히 세워졌다. 하지만 당시 척화비의 정확한 현황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임씨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는 복제품을 제외한 원형 척화비만 35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척화비는 형태는 각양각색이지만 비에 새긴 비문은 스물네 자로 모두 동일하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현존하는 척화비 중 건립 주체를 비에 명시한 척화비는 2기가 있다. 고창현에서 세운 전남 고창 척화비와 감영에서 세운 대구 원화여고 척화비다. 이중 원화여고 척화비는 조선시대 경상도 전 지역을 관할했던 경상감영에서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비다. 비문 끝부분에 순영에서 세웠다는 뜻의 '순영입(巡營立)' 세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전국에 남아 있는 35기 척화비를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찾아가 조사했다. 그중 원화여고 척화비는 순영에서 세웠다는 기록이 새겨진 유일한 척화비"라며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 고증을 통해 경상감영 척화비임이 확인되면 대구 경상감영공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글·사진=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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