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00410010000334

영남일보TV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툴리' (제이슨 라이트맨·2018·미국)

2020-04-10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하여

2020041001000098000003342

집안 정리를 하다 오래된 편지뭉치를 발견했다. 대학 시절부터 신혼 초까지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옛날 일들이 떠오르고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신혼 초까지 이어진 편지는 아이를 낳은 뒤부터 끊어져 있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때까지의 세상과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편지를 쓰고 있을 시간은 당연히 없다. 영화 '툴리'는 전쟁과 같은 육아현장의 생생한 보고서다. 여성이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 것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아이 둘의 엄마 마를로는 셋째를 임신 중이다.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딸과 선천적으로 예민한 아들, 육아와 살림에 무지한 남편 사이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몸도 마음도 지친 그녀에게 오빠가 구원의 손길을 보낸다. 야간 보모를 구해준다는 것. 한계 상황에 부딪힌 마를로는 '툴리'라는 이름의 야간 보모를 맞이하고 많은 것이 바뀐다. 툴리는 단순히 아이만 돌보러 온 것이 아니라 마를로를 돌보러 왔다고 한다. 툴리 덕분에 마를로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평화를 찾는다.

2020041001000098000003341

영화를 보고 나서 육아에 전념하던 옛날을 떠올려봤다. 밤마다 잠을 설친 것은 물론 울어대는 아이 앞에서 쩔쩔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실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어쨌든 지나왔다는 것, 그리고 품 안의 아이들은 이제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지금도 아이들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저리고,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자식만큼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 세상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만큼 귀한 일은 없다. 그리고 그만큼 고달프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절대 혼자 보지 말기를. 특히 미혼여성이 혼자 보는 건 금기다. 결혼도, 육아도 더욱 기피하게 될 테니까. 그만큼 사실감이 넘치는 영화다. 물론 영화니만큼 과장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육아의 고충, 특히 산후우울증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린 영화는 없는 것 같다. 이것은 20㎏ 이상 살을 찌우며,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배우 샤를리즈 테론의 힘이 크다. 또한 자신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창조한 각본가 디아블로 코디의 공헌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반드시 남편 혹은 장래 남편감과 같이 봤으면 좋겠다.

프랑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을 보면 성인이 된 주인공이 어린 날의 자신을 안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성인이 된 자신이 상처투성이였던 어린 날의 자신을 다독이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영화 '툴리'는 이와 반대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나를, 건강하고 활기찼던 젊은 날의 내가 위로해주는 것이다. 치명적인 스포일러지만 사실 툴리는 젊은 날의 마를로 자신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잠시 마를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말한다. 이른바 내 안에 또 다른 인물이 존재하는 다중인격, 해리성 인격장애라는 거다.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내가 현재 나를 돌봐준 것을 병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영화의 의미를 이렇게 확장시켜 보면 어떨까. 힘겹고 지칠 때, 가장 잘 살고 있을 때의 나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가장 멋진 모습의 내가 지금 바닥에 있는 나를 위로한다면 힘든 시절을 통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마를로에게(어쩌면 나의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이란 누구나 힘겨운 거라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거라고. 혼자서 다 해내려 하지 말고 도움을 받으며, 도우며 그렇게 살아가라고. 시인·심리상담사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