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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미애의 문화 담론] 안분지족(安分知足) 소시민

2020-06-05

국채보상운동~코로나 사태, 의연하게 위기 극복 대구경북 보통사람들
일상과 이웃간 정도 빼앗아간 전염병
시민에 상처 준 대구 코로나·봉쇄령
親文 정치인이 내던진 지역 향한 막말
터무니없는 선전·선동으로 참담·충격
환란때마다 희생정신·호국이념 앞장
지혜·의지력으로 재난 이겨낸 지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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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수창초등 인근 광문사터. 국채보상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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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석적읍 낙동강 둔치 일대에서 국군장병들이 낙동강 방어선 전투 도하작전을 재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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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보건소 드라이브스루 임시선별진료소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문자를 대상으로 문진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모내기 철을 맞아 인터넷으로 농촌일손돕기 정보를 검색하던 중 뜻밖에도 빛바랜 사진 한 컷을 발견했다. 무논에서 노타이차림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농민들과 모내기하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이었다. 국가 경제를 일으켜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튼튼한 안보 정책으로 국민의 기(氣)를 살려주던 민생 대통령.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진 것은 청와대에서 '파안대소'하던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되기 때문이었다.

파안대소하던 문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날은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고 첫 사망자가 발생한 날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을 불러 영화 속의 귀족적·권위적 '짜파구리' 오찬을 즐기며 희희낙락하는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언론사에 배포했다. 게다가 김정숙 여사는 이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부처 공무원까지 동원하고 스타 셰프를 불러 전통시장을 찾는 바람에 뒷말도 많았다.

이 영화는 부유층의 위선과 차별의식, 비정함에 저항하며 문서 위조와 사기행각을 일삼는 빈곤층의 비양심과 몰염치를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록 구차하게 살지만 법을 잘 지키고 양심껏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염장을 지르기 딱 알맞은 영화이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재난에 직면한 상황에서 설마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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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모내기를 하고 있는 고(故)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

대통령 내외도 한때 보통사람을 자청하며 국민의 환심을 샀다. 보통사람이란 특별한 존재감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흙수저 출신 서민층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흔히 먹고사는 걱정 없이 맘 편하게 분수를 지키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소시민들이다. 이웃끼리 서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으며 정 붙이고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생활 문화다. 선민의식 없이 누구나 평등하고 열심히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정서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정겹게 살아가던 이웃이 서로 감염될까 두려워 얼굴 마주치는 것조차 기피하고 스스로 봉쇄하며 버텨왔다. 지옥이 따로 없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눈만 뜨면 밥벌이를 위해 지옥에 다녀와야 했다. 이 지옥이 생겨난 것은 정부가 '차이나 게이트'에 발목 잡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은 우리와 공동운명체, 중국의 어려움이 곧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아예 코로나 발원지 중국에 문을 활짝 열어주고 방역 시기를 놓쳐버린 탓이었다.

그러다가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갈팡질팡하던 정부가 뒤늦게 어린애 가르치듯 보통사람들의 생활 문화에 온갖 간섭을 다했다. 마스크 쓰고 손 씻는 것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지겹도록 메시지를 날리며 보통사람들의 염장을 질렀다. 게다가 정작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사회주의식 5부제 배급방식까지 동원해 한없이 줄 세우다가 한 고교생의 꽃다운 목숨까지 앗아갔다.

권력에 도취된 지배의식과 선민의식 때문인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정부 공식발표문에 난데없이 '대구 코로나'가 등장하고 '대구 봉쇄령'까지 나와 대구경북 보통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놨다. 여기에다 한 친문(親文) 정치인은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경북은 감염증 확진자가 아무리 폭증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손절해도 된다"고 조롱했다. 손해 본다는 뜻이 아닌 '씨를 말린다'는 증오와 저주의 표현 손절(孫絶)로 들려 살이 떨렸다. 4·15 총선을 앞두고는 대구경북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넋 나간 대구시민, 엄청나게 무능"으로 적개심을 나타내더니 "100년 친일(親日) 청산, 70년 적폐 청산"으로 유권자들을 선동했다. 총선 막바지엔 '아이 돌봄 쿠폰' 40만원씩 돌려 3040 세대를 유혹하더니 아예 법절차도 무시하고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으로 융단폭격하듯 서울·수도권을 휩쓸었다. 4인가족 억대 연봉자도 29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 피해가 가장 극심한 대구경북은 한창 신청접수(4월1일∼29일) 중인데 말이다. 가히 관권·금권을 동원한 총선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대구경북 보통사람들은 이런 참담하고 충격적인 현실에서도 결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저들은 터무니없는 선전·선동으로 올인 한 총선에서 결국 압승하고 더 이상 거칠 게 없어진 듯 또다시 대구경북 보통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념이 전도된 한 대학 교수가 대구경북을 가리켜 "눈 하나 달린 자들의 왕국"이라며 "독립해서 주인 나라 일본으로 떠나라"고 숫제 친일·반역의 고장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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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미래에 울려 퍼지는 과거의 메아리가 역사"라는 말을 남겼다. 메아리치는 과거의 역사도 모르는 무식한 자가 대학 교수라니, 학생들이 대체 뭘 배우겠는가. 이 정권은 '국채' 무서운 줄 모르고 나랏돈을 펑펑 뿌리지만 대구경북은 구한말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겠다며 십시일반 쌈짓돈까지 털어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고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닷새 전인 1919년 2월24일 대구제일교회에서 맨 먼저 만세운동에 불을 지폈다. 6·25전쟁 때는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 이 나라를 구해낸 것도 대구경북 보통사람들의 희생정신과 호국이념이었다.

그런데 작금에 권력 실세로 폭주하는 저들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80년대 튀틀린 이념으로 투쟁해온 학생운동을 마치 전리품처럼 자랑하고 이번에도 줄줄이 훈장(?)을 꿰찼지만 어디 민주화운동이 저들만의 전유물인가. 최초의 민주화운동은 60년 대구시내 고교생들의 2·28 의거가 도화선이 돼 3·15 부정선거 규탄을 거쳐 4·19혁명의 원동력이 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때 의거를 일으킨 선대 어르신들은 팔순에 든 지금까지도 평생 자랑할 줄 모르고 묵묵히 향인(鄕人)의 긍지로 삼고 있다.

엄혹했던 시절 6·29선언을 이끌어낸 것도 보통사람들의 저력이었다. 도도한 민심의 물결에 무임승차한 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 투쟁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앞세우고 보통사람들을 현혹하며 서로 먼저 대통령 해 먹겠다고 과욕을 부리다가 결국 낙선하지 않았던가. 깨어 있는 보통사람들을 우습게 본 탓이었다.

이후 권력의 화신이 된 둘은 번갈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한 사람은 IMF 환란을 불러 나라를 온통 빚더미에 앉게 했고, 또 한 사람은 햇볕정책으로 대기업 자금까지 끌어다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고 핵폭탄을 선물했다. 그 결과 보통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대구경북 보통 사람들은 서울·수도권처럼 권력에 기대어 편 갈이나 하고 욕심부릴 줄도 모르고 스스로 재난을 극복해 나갈 지혜가 있고 의지력도 있다. 그저 밥 안 굶고 안분지족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그만이다. 나랏돈을 제 돈처럼 펑펑 써대는 권력의 시혜는 아예 바라지도 않고 우국충정과 충효의절의 도덕적 전통을 꿋꿋이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대구경북의 정서다.

그러니 부디 권력을 이용한 지배의식으로 보통사람들 기 죽이지 말고, 조롱하지도 말고,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지도 말고 그냥 가만히 놔두기 바란다. 비록 없이 살아도 맘 편하게 살고 싶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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