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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내가 생각하는 한국 연극

2020-06-24

안민열
안민열〈연극저항집단 백치들 상임연출〉

극적 환상이라는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배우와 관객이다. 고정된 사물은 고유의 운동성으로 머물거나 기능하지만, 극장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움직이는 주체는 사람이다. 보는 사람(관객)과 하는 사람(배우)의 접촉은 말과 몸, 빛과 소리 같은 질료들에 의해 조직되고 연관된다. 여러 유기체가 하나의 지점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제3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나의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지나간 과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극적 환상은 빈 공간에서 연출되는 수단으로써 이용된다.

이렇듯 연극이 역사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는 것이다. 다양한 극적 양식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될 뿐이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본질은 '인간과 지금'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나는 누구인가' '이곳은 어디인가'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의식은 연극에 있어 가장 명확하고 심미적인 의미를 지닌다. 무대 위에 사람이 출현하고, 사람과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이것만큼 간결하고 강력한 기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극장(혹은 드라마)에서의 시간을 기대하고 흥분한다.

요즈음 현재 젊은 연극인들의 작업방식을 보면 본질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연극을 보면 극의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고, 의식보다 무의식에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하게 된다. 현대 연극에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을 인정하지만 자기 행위의 목적이나 가치관은 점점 망각하는 것 같아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장르나 스타일의 다양성은 필요하다. 그로 인해 발전되는 메커니즘은 보는 이의 즐거움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표현의 수단이자 질료일 뿐이지 본질이 될 순 없다. 그렇다면 그 본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여기 실존하는 인간에 있다. 행위자와 관찰자로 대표되는 인간, 즉 배우와 관객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사유하면 가능하다.

양적으로 포화되는 기술의 범람은 결코 장르의 완전한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는 극장에 관객이 없다는 아우성이 아니라, 열악한 현실에도 찾고 싶은 극장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해결책은 겹겹이 쌓인 옷들을 오히려 벗어던져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에 있다 믿는다. 그때 비로소 연극조차 사라지고 인간만 남는다.
안민열〈연극저항집단 백치들 상임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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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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