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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우리말과 한국문학] 코로나가 탄생시킨 신조어 '동학 개미'

2020-07-09

코로나 인한 증시 폭락장
주식 사들여 주가 떠받친
개인투자자 가리킨 용어
동학농민운동에서 착안
주식매입 '농민봉기'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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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근 코로나 이후 탄생한 신어 '동학 개미' '동학 개미 운동'은 신어를 만들어내는 대중의 언어 감각을 다시 한 번 감탄하게 하는 용어들이다. 오늘 하루에도 수백 건의 경제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동학 개미'는 코로나19로 인한 증시 폭락장에서 국내 주식을 사들여 국내 주가를 떠받쳐 온 개인투자자를 의미한다. 누가 만든 용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코로나 상황에서의 증시를 동학혁명 당시의 상황을 빗댄 것은 직관적으로 선명하고 기발하다. 여기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 상황에 대한 위협은 1860년대 서양 세력과 천주교 확산에 대한 위기감과 유사하고,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서 개인투자자인 '개미'와 동학 '민중(농민)'의 주도적 역할 역시 공통점이 있다.

동학 농민 운동에서 착안한 '동학 개미 운동'은 개인투자자들 '개미'의 주식 대거 매입 흐름을 '농민'의 봉기와 같은 맥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 용어의 창조는 문학에서는 패러디, 언어학에서는 유추의 과정·은유 등으로 논의되기도 하는데 이들은 신어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존재들이다. 오래전부터 '개미'는 곤충뿐만 아니라 주식 시장에서의 개인투자자를 함께 가리켜 왔고,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개미'는 곤충과 사람, 두 가지 의미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기존 형태의 의미가 다른 개념으로도 확장되는 현상을 '의미 확장'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의미 부여를 시도하는 창의성 있는 언중 덕분에 언어는 늘 변화하고, 한국어와 사전은 더 풍부해지고, 언어생활은 더 효율적이고 흥미로워진다.

신어 연구자들은 개미와 같은 의미 확장을 '의미적 신어'라고 하기도 한다. 이때 의미적 신어는 '심쿵' '깜놀'과 같이 새로운 형태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의 신어와 달리 기존의 형태에 새로운 의미만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추억 소환' '여심 저격' 등에서 '소환' '저격'은 의미적 신어다. 추억을 소환할 때 우리는 법정을 전제하지 않아도 되고, 법적 구속력도 없으며, 사람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나 추억을 소환하게 된다. '저격' 역시 마찬가지인데, 마음을 저격하는 일은 적어도 현재의 국어사전에서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인생'이나 '폭풍'도 유사한 사례다. '인생 드라마, 인생 바지'의 인생은 '전체 인생에서 최고로 꼽을 만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사전에서 기술되지 않은 의미다. 폭풍은 '폭풍 주의보'나 '아열대성 폭풍'에서와 전혀 다른 맥락인 '폭풍 가창력, 폭풍 먹방, 폭풍 성장'과 같이 쓰이는데 이 역시 기후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단한, 엄청난'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사전에 없는 이러한 의미들은 기존 언어 체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의미를 더 적확하게 나타내고 싶은 욕구, 좀 더 인상 깊은 언어 효과를 원하는 언중에 의해 창조되고 유포되어 상당 부분 정착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의미들은 언중의 선택에 따라 정착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를 사용한다고 해서 사전에 없는 의미를 사용한다고 언중을 나무랄 수 없다. 지금 사전에 있는 모든 어휘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AI 열풍으로 인공지능 스피커의 성능과 효용성에 대해 대중과 학계의 관심이 높다. AI는 이러한 말을 만들거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언어에 대한 감각과 직관을 AI가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남길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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