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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

2020-07-31

900년 넘게 버틴 벽돌탑서 내려다본 '탑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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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의 랜드마크 아시넬리 탑과 가리젠다 탑.

볼로냐만큼 많은 별명을 가진 도시도 드물다. 도시 전체가 붉은 벽돌 건물이어서 '빨간 도시', 탑이 많아서 '탑의 도시', 먹거리가 많고 맛있어서 '이탈리아 음식의 수도' 혹은 '뚱보의 도시'라고 불린다. 그뿐인가. '세계 아동도서의 도시' '세계 협동조합의 수도' '마세라티의 도시'라는 별명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시이지만 피렌체와 베네치아라는 두 유명 관광 도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볼로냐를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는 '교육의 도시' 혹은 '현자의 도시'라는 별명 때문이었다. 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 유럽 대학들의 모교, '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이란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는 볼로냐대학교 이야기다.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를 헤매면서 볼로냐가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베네치아로 가는 도중에 온전히 하루를 빼서 볼로냐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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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레나'라고 불리는 볼로냐의 대표 공연장.

볼로냐는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州都)로 40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꽤 큰 도시다. 아펜니노 산맥 북쪽 기슭에 로마시대부터 생긴 에밀리아 가도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는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6세기에 비잔틴의 지배를 받았으나 12세기에는 강력한 자치도시가 되었다. 1249년에 프리드리히 2세를 격파하여 더욱 강대해졌고 그 후 장기간의 내란 끝에 1506년부터는 교황령(領)이 되었으며 나폴레옹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통일때까지 교황령으로서 평화를 누렸다. 중세 이래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볼로냐대학은 법학의 볼로냐파와 함께 널리 알려졌다.

걷는 거리를 줄이려고 최대한 중심가 가까운 주차장을 찾았다. 인디펜덴차 거리의 '아레나 델 솔' 극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거리를 나섰다. 인디펜덴차 거리는 볼로냐를 관통하는 중심가다. 양쪽 길가로 화장품 가게, 약국, 옷가게, 음식점, 기념품 가게 등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보니 어느새 볼로냐 여행의 핵심 '마조레 광장'에 가까웠다. 마조레 광장을 끼고 리졸리 거리로 고개를 돌리니 볼로냐의 랜드마크 '두 개의 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시넬리 탑과 가리젠다 탑이었다.

볼로냐는 중세 시대에 100개가 넘는 탑들이 있어 탑의 도시로 유명했다. 탑은 중세시대에 방위를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12∼13세기 교황당과 황제당의 싸움, 그리고 지방의 전제군주 간의 대립이 격렬했을 때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대가문들이 경쟁적으로 탑을 세웠다. 현재는 20여 개의 탑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가리젠다 가(家)와 아시넬리 가(家)의 이 두 탑이 볼로냐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붉은 벽돌 건물 빨간도시
유니버시티 처음 사용한 교육의 도시

중세시대 100개의 탑, 20여개만 남아
랜드마크 100m 아시넬리·가리젠다 탑
다양한 城 역사유적 집중 마조레 광장
삼지창 든 바다神 포세이돈 넵튠분수
세계 다섯째 큰 산페트로니오 대성당



약 100m에 달하는 아시넬리 탑은 1109년 귀족 아시넬리를 위해서 세워진 것으로 정상에 있는 전망대까지 486개의 계단이 있다. 12세기 볼로냐 건축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이 탑은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다. 900년 넘게 버틴 벽돌 탑이라 군데군데 강철로 둘러 보강을 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4m의 가리젠다 탑은 눈에 띄게 기울어져 있었다. 원래 100m가 훨씬 넘는 높이였다고 하는데, 14세기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탑이 기울자 붕괴를 막기 위해 60m 정도를 없앴다고 한다. 단테는 그의 저서 '신곡'의 '지옥편'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 안타이오스를 이 가리젠다 탑에 비유했다. 단테의 이 비유를 통해 당시에는 아시넬리 탑보다 훨씬 높고 웅장한 탑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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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레 광장. 왼쪽이 코뮤날레 성이고, 오른쪽이 포데스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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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레 광장의 포데스타 성.

두 탑 인근의 마조레 광장은 볼로냐의 중심이다. 시청사로 사용되는 코뮤날레 성을 비롯하여 노타이 성, 반치 성, 포데스타 성, 산페트로니오 대성당 등 역사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 포데스타 성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리지널 파사드가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중앙에 있는 탑은 다른 탑과 달리 둥근 천장의 칼럼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코뮤날레 성은 시청사 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성 왼쪽에 있는 탑은 15세기에 추가되었고 건물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청동상은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달력 '그레고리력'을 만든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다. 그는 볼로냐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했다. 훗날 교황이 되어 과학과 예술을 후원하면서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우뚝 서 있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넵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다. 이탈리아의 슈퍼카 마세라티의 엠블럼이 바로 이 삼지창이다. 마세라티는 바로 1914년 이곳 볼로냐에서 창립되었기 때문에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삼지창을 엠블럼으로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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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성당인 산페트로니오 대성당.

이 광장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산페트로니오 대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길이 132m, 너비 60m, 높이 45m로 2만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원래는 로마의 산피에트로 대성당보다 크게 설계되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벽돌로 건축한 중세 건축물 중에서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광장을 돌아 나오니 근처에 라가치(RAGAZZI) 서점이 눈에 띄었다. 이 서점에는 이름에 걸맞게 라가치상을 수상한 각종 그림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라가치상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그림도서상이다. 매년 국제아동도서전을 개최하는 볼로냐는 도서전에 출품된 그림책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고 교육적이며 디자인이 뛰어난 도서를 선정하여 이 상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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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거리의 특색인 아케이드. 이탈리아에서는 포르티코(Portico)라고 부른다.

서점을 나와 볼로냐대학을 가기 위해 잠보니 거리로 들어섰다. 볼로냐에는 곳곳에 포르티코(Portico)라 불리는 아케이드가 늘어선 거리가 많아서 '포르티코의 도시'라는 별명도 있다. 포르티코는 건물 내에 길게 뻗은 기둥으로 보행로를 만든 독특한 건축양식을 말한다. 말을 탄 채로 그 안의 공간을 다닐 수 있도록 포르티코의 높이를 2.66m로 통일했다고 한다. 이 도시의 포르티코를 합할 경우 총 길이가 38㎞나 되며 시 외곽까지 합하면 무려 45㎞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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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대학 건물.

볼로냐가 이처럼 포르티코의 도시가 된 것은 볼로냐 대학과 관계가 있다. 유럽 각지에서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의 수가 많아지자 시내 중심가에 방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도 위에 기둥을 세워 포르티코를 만들고 2층에는 방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세를 놓았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찾아간 볼로냐 대학 역시 이런 포르티코가 늘어선 건물이었다. 볼로냐대학 건물은 주로 아시넬리 탑에서 잠보니 거리 주변에 많이 흩어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좁은 골목에 박물관, 극장, 서점, 식당, 주택 등과 뒤섞여 있었다. 'Alma Mater Studiorum(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이라는 구호가 적힌 이 건물이 볼로냐대학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유럽 각지서 공부하러 몰려든 유학생
인도에 기둥 세워 방 만든 '포르티코'
13C 교회 격렬한 반대에도 해부실험
학생수 7만명 거대 명문 볼로냐대학



볼로냐 대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공식 문서에 등장한 것은 1088년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이보다 더 길 것으로 추정된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칙령을 통해 이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인정했다. 초창기 학교는 자체적인 건물 없이 수도원 강당 등을 전전하면서 수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동로마제국이 함락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지식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고 덕분에 볼로냐대학에서는 일찍부터 인문학이 꽃피게 되었다. 13세기 후반 교육 범위를 법학, 의학, 철학, 신학 등으로 확대했다. 이 무렵 학교는 당시 교회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세계 최초로 해부 실험을 감행했다. 볼로냐대학교의 해부는 세계 최초의 해부 연구로 인정을 받고 있다. 지금도 볼로냐 대학교는 학생 수만 7만명이 넘는 거대한 규모의 명문대학이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 '신곡'의 단테,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 등이 모두 이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아울러 생리학자이자 현미 해부학의 창시자인 마르첼로 말피기, 해부학자 몬디노, 철학자 피에트로 폼포나치, 형법학자이자 범죄사회학자 엔리코 페리, 소설가이자 수필가 알프레도 판치니, 시인 알레산드로 타소니, 문예비평가 레나토 세라 등 오랜 역사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볼로냐는 알고 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도시다.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서론과 결론이라는 말은 아니겠지만 볼로냐를 이탈리아 여행의 본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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