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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일상을 기다리며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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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친환경운동장 조성사업' 현수막도 거두고 공사 차량이 다 물러갔다. 라인 마킹까지 끝낸 깨끗한 모래 운동장을 맨발로 처음 걸어 보았다. 계절의 변화는 놀라워 저녁이 일찍 찾아오고 고요해진 학교 운동장으로 가을바람이 풀벌레 소리를 담아온다. 스탠드에 앉아 가로등 불빛으로 다목적구장의 화려한 바닥을 보노라니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 읽은 시칠리아섬의 그리스 원형극장을 보는 심회가 든다. 코로나 때문에 멈춘 일상, 농구가 하고 싶어 댓바람에 학교에 오던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2012년은 교감 첫해였다. 학교폭력근절 대책으로 스포츠클럽 수업과 복수담임제가 전격 도입되었다. 복수담임제는 실효성이 없어 대부분 첫해 폐지되었지만 스포츠클럽 수업은 여전히 건재한다. 마침 그해부터 2·4주 '놀토'에서 전격적으로 주5일 수업도 시행되었다. 학부모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학교는 토요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했고,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까지 참여율을 보고했다.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금요일만 되면 여러 토요일 학교행사와 각종 복지프로그램을 꽥꽥거리며 홍보했다. 특히 그 무렵 복지프로그램은 각종 체험과 견학을 활발하게 운영해 '복지 대상 애들은 토요일 놀 자유도 없나'는 자조적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나마 자발적으로 제일 인기 있는 것이 축구나 농구·배드민턴인데, 강당도 없는 데다 운동장도 손바닥만 했던 그 학교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교 뜰은 아담하고 나무도 많았지만 운동장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체육수업 확대에 방과후학교 특기적성 수업이 강화되었지만, 모래흙은 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나고 마사토를 보충해 주지 못해 딱딱한 맨땅이었다.

운동장은 살아있어야 한다. 야생의 피가 끓는 수백 명의 남자 중학생들이 으르렁대며 거친 호흡과 넘치는 에너지를 그나마 내뿜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신설교인 만큼 폐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붉은 우레탄 트랙과 다목적구장 녹색 우레탄이 작년 후반기에 가차 없이 철거되었다. 우레탄 탄성포장재에 대한 안전기준이 높아지고 검사 항목도 많아지면서 우리 학교는 2019년에 4개 항목 42개의 성분에서 환경호르몬(프탈레이트) 중 딱 한 성분이 기준치를 넘었다. 우레탄을 벗겨내고 시멘트 바닥을 드러낸 채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방학 중 콘크리트는 굉음을 내며 시커멓게 터진 속을 내보이며 운동장을 떠났다. 그렇지만 차가운 농구장 바닥은 아무리 친환경이라 해도 차마 굵은 모래로 덮을 순 없었다. 학생자치기구의 건의와 교직원 협의와 검토를 수차례 거쳐 친환경은 물론 적절한 탄성에 미끄럼방지까지 가능한 블록 방식의 고급스러운 조립 플라스틱 바닥재를 설치했다.

비 내린 아침, 운동장 울타리 넝쿨장미가 뒤늦게 많이 피었다. 세상에나~ 이파리와 꽃잎에 맺힌 빗방울에 선연한 모래 빛이 굴절된다. '더 좋은 날이 있다. 좋은 날이 온다. 퍽퍽한 이 감정은 바로 잊힐 것이다….' 그리고 욕심을 덜어내고 가까운 사람에게 친절하며 단순하게 살아갈 것이다. '얘들아, 이젠 마스크 벗고 몸으로 부대끼며 운동장 마음껏 뛰어. 그래 뛰라고!' 카프카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바로 일상'이라는 것! 우리는 아이들에게 즐겁게 공부하고 뛰어노는 일상을 반드시 살아내게 할 것이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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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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