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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재중동포 3세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

2020-09-25

경주·군산·후쿠오카 세 도시의 연인, 그리고 이어진 역사적 아픔

장률.감독_수정
장률 감독.

아직도 영화 '망종'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중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힘겹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족 여인 '최순희'가 겪는 소외와 분노, 파국을 묵묵히 그린 영화로 감독의 카메라는 절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주인공에게 어떤 동정이나 연민을 두지 않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다. "망종은 신뢰를 상실한 세계의 회복을 갈구하는 영화다"(김영진), "사막에서 찍은 영화처럼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장률은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남동철) 같은 평단의 극찬이 잇따랐고 2005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ACID상, 이탈리아 페사로영화제 대상,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2006년 프랑스 브졸영화제 대상, 벨기에 노보영화제 경쟁부문 대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평단 극찬과 해외영화제 호평 '망종'
韓 건너와 '경계' '이리' '중경' 연출
탈북자 이야기 '두만강' 강렬한 인상
독특한 이력의 독보적 '시네아스트'


망종을 연출한 장률 감독은 독보적인 시네아스트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 옌벤에서 나고 자란 재중동포 3세인 대학 중문학 교수와 소설가 출신이다. 1980년대 말부터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군에 꼽혔던 그는 2001년 영화로 전향했다. 한 해 전 영화를 하는 친구와 다투다 "영화 같은 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홧김에 던지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만든 생애 첫 단편영화 '11세'(2001년)는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받았고 3년 뒤 완성한 장편영화 '당시'(2004년)는 로카르노와 밴쿠버 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 이후 망종(2005년)을 내놓고 한국으로 건너와 배우 서정과 함께 사막과 초원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몽골의 유목민을 그린 '경계'(2007년)와 쌍둥이처럼 연결된 '이리'(2007년)와 '중경'(2008년)을 선보인다. 장 감독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탈북자 이야기 '두만강'(2009년)은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강렬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경주(2013)_포스터
'경주' 포스터. (2013)

장률 감독을 대중에게 각인시켜준 작품은 '경주'(2013년)부터 아니었을까. 전작들과는 다르게 소박한 유머와 엉뚱함이 유쾌하게 깃든 영화였고 생명력이 충만한 경주라는 소도시의 여름을 낭만적으로 그린 점도 관객들에겐 좀 더 편하게 다가갔으니까. 무엇보다 주연을 맡아 포스터 전면에 나선 배우 박해일과 신민아 때문에 멜로물처럼 보이기도 했었고. 영화는 7년 전 보았던 춘화(春畵)를 찾는 수상한 남자 '최현'(박해일)과 우아한 첫인상과는 달리 엉뚱한 여자 '공윤희'(신민아)의 1박2일을 보여준다. 경주는 장례식으로 시작해 주인공이 하루 동안 겪는 죽음을 경유하는 영화로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무덤인 영화 제목과 동명인 소도시가 낯설지 않은 나에게는 퍽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군산(2018)_포스터
'군산' 포스터. (2018)

이후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춘몽'(2016년)을 지나 2년 후 내놓은 '군산'(2018년)은 작품의 배경이 된 전작의 경주가 1천년의 삶과 죽음이 머물러 있는 곳이었다면 이번 군산은 100여년 전의 과거를 간직한 곳으로 경주보다 훨씬 경쾌하다. 군산은 일본식의 옛 가옥들과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마을 같은 1930년대의 역사가 멈춘 듯한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도시다. 장 감독은 한국과 일본이 은근히 비슷한 구석도 많다는 생각에 일제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를 찾다 군산을 택했다고. 서울을 떠나온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은 군산에서 꿈처럼 계속 시를 떠올리거나 일상을 시처럼 포착하는 민박집 주인에 마음이 쓰인다. 둘은 낯선 군산을 둘러보며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하다 시인 윤동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지 않고 옌벤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그 역시 '조선족'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한국인이면서 중국인인 감독의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1천년의 삶과 죽음이 머문 곳 '경주'
역사가 멈춘듯 이국적 정취의 '군산'
수많은 재일동포가 터 잡은 '후쿠오카'
가장 일상적 소재, 상처와 모순 공존

후쿠오카(2019)_포스터
'후쿠오카' 포스터. (2019)

지난달 27일 개봉한 '후쿠오카'(2019년)는 개봉 전이었던 지난해 제62회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공식 초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 받은 데 이어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서울의 대학가에 위치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제문'(윤제문)은 엉뚱한 손님 '소담'(박소담)의 제안을 받고 그녀와 같이 즉흥적으로 일본 후쿠오카로 떠난다. 그곳에는 제문과 친한 선배였으나 삼각관계에 놓여 연락을 끊고 지낸 '해효'(권해효)가 제문처럼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제문과 소담은 해효의 가게를 찾아가 술잔을 기울이며 28년간 악감정을 쌓은 두 선후배의 감정을 조금씩 풀어간다. 후쿠오카는 한국과 가까운 거리로 수많은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 도시이면서 중국과도 오래 교류한 국제화 도시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마을의 정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있던 형무소에서 윤동주 시인이 스물일곱 살에 옥사했다. 그러면서 후쿠오카국제영화제는 장 감독이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초청했고, 지난해에는 특별전까지 기획해 남다른 인연이 있단다. 도시의 아름다움과 소담한 정서를 느끼면서 윤동주의 요절로 도시 전체가 감옥 같이 느껴지는 상반된 그간의 경험은 이번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들 얘기도 좀 더 하고 싶다. 배우 권해효는 그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며 무려 10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제작진과 관객 모두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다. 배우 윤제문 역시 권해효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작품에서 선 굵은 연기들을 펼쳐왔고 불미스러운 사고들이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 장난기 넘치고 밉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 의외의 귀여운 면모를 선보인다. 경주와 군산의 연결고리가 박해일이었다면 군산과 후쿠오카는 배우 박소담이 잇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 관객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 소박한 영화에서 두 남성배우 사이를 관망하다 훌쩍 떠나가는 예측불허 캐릭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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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장률의 도시 3부작은 사랑이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소재를 역사적인 아픔과 모순이 공존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낸다. 이 무참한 팬데믹 시대에 경계인 시네아스트가 건네는 연애와 인간관계에 관한 영화들로 모두 위무받기를!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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