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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동대구로에서] 가을편지

2020-09-30

가을과 편지 사이 낙엽 피고
갈대와 억새도 가을 노래
김민기·김현식·박인희…
가을 바람과 보름달 품고
소중한 이에게 가을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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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가을과 편지의 경계. 거기서 낙엽이 피어난다. 낙엽의 호위무사랄 수 있는 소슬바람이 개입하면 가을의 진경(眞景)도 비로소 모양새를 갖추는 셈. 라디오방송에선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을 타는 노래를 흘려보낸다.

김민기 작곡, 고은 작사, 최양숙이 부른 '가을편지'는 한때 이브 몽땅의 '고엽'과 함께 '가을동행곡'이었다. 내겐 김민기가 직접 부른 '가을편지'가 더 가을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김민기가 부른 '그사이'란 곡도 절절하다. '해저무는 들녘 밤과 낮 그 사이로/ 하늘은 하늘 따라 펼쳐 널리고/ 이만치 떨어져 바라볼 그 사이로/ 바람은 갈대잎을 살 불어가는데…'. 나는 그 구절 중 '바람은 갈대잎을 살 불어가는데'라는 대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가을바람은 매순간 갈대·억새를 서걱서걱 초단위로 건드린다. 그럼 그 잎의 테두리는 이스트 머금은 밀가루 반죽처럼 엄청 부푼다.

박인희도 천상 가을 목소리다. 그가 낭독한 '세월이 가면'은 '가을시인' 포스였던 강원도 인제 출신의 박인환이 서울 명동의 한 술집에서 순식간에 작사된 것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속에 있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그 낭독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인환의 가을시 2탄이랄 수 있는 '목마와 숙녀'가 목청을 가다듬는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그 바람은 당연히 가을바람, 늙은 여류작가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다.

그리고 가을 속으로 더 자맥질하고 싶다면 그의 외삼촌이 소리꾼 임방울이었던 전남 담양 출신인 김정호의 이 노래까지 복용해봐야 된다. '날이 갈수록'이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올가을 센티멘털리즘 별책부록을 독자 여러분에게 내밀어 본다. 1951년 뉴욕에서 태어난 포크싱어 제니스 이안(Janis ian)의 'Stars'인데 눈 감고 감상해보시길. 에바 케시디도 가을 보이스라지만 그녀의 애조는 도를 넘어 너무 청승맞아 들을수록 질린다. 하지만 이안의 목소리는 기름기를 완전 뺐다. 심우주로 들어선 우주선에서 스며나오는 외로운 불빛 같다. 목청의 매듭마다 가을이 흥건하다.

11월1일이 되면 낙엽천지로 치닫는다. 대구는 11월13일쯤 끝물 낙엽이 뒹군다. 그럴 때 우린 또 한 명의 치명적인 가수를 기억해야 된다. 33년간 가을비처럼 살다간 김현식이다. 그가 떠난 그날은 '시의 날'. 한국의 첫 현대시로 불리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창간된 잡지 '소년' 권두시로 실린 날이 11월1일. 1987년부터 그날이 시의 날로 정해진다.

십수 년 전 북한 측에서 한국사에 남을 두 명의 시인을 지목했다. 김소월과 이상화였다. 그런데 올해 이상화시인상에 변고가 생겨 수상이 취소됐다. 시보다 시인을 더 섬기려는 욕망, 그게 불러온 '죽은 시인의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 아닌가.

차라리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아진 파란 하늘. 못난 자의 추억조차 간이역처럼 피어난다. 유행가 스친 자국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돋아난다. 모두 시인이 되는 가을, 다들 한가위 품으며 가을편지를 파종해보시길….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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