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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세상보기] 언니 결혼식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

2020-11-04
김점순

"너희 형부가 제일 예쁘고 토실토실한 것만 골라 담았다."

얼마전 대구 동대구역에서 언니가 땅콩 봉지를 내밀면서 씩 웃는다. 차 한 잔을 마실 수 없는 짧은 시간이지만 언니를 만나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작은 행복이 되었다.

사람들은 삶의 활력소나 소소한 즐거움은 그때그때 바뀐다고 한다. 우리가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의외로 별것 아닌 일들이 많다.

50년 전 언니 결혼식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땅콩을 볼 때마다 미소 짓게 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9년 겨울.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언니가 23살의 나이로 시집을 갔다. 결혼식 날 저녁 새신랑 다루기가 끝나고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누군가가 발견한 정종박스. 호기심으로 벽에 걸린 박스를 내려 보니 술 대신 땅콩이 가득 들어있었다.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한 개 두 개 먹다보니 어느 사이 빈 통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고 빈 통은 마당에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뒹굴어진 정종 종이박스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어대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필자다. 누가 먹었느냐고 떼를 쓰며 울어대니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자가 정종 통을 보고 와 카노." 친척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새신랑과 사촌들이었다. 새신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사촌은 땅콩을 사려고 동네 수소문을 했지만, 헛수고였다는 후문이다.

필자의 고향에는 한두 집이 땅콩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역 특성상 논 농사 중심이었고 땅콩은 귀한 밭작물이다. 땅콩 이삭을 주워 알이 꽉 찬 것만 골라서 정종 박스에 넣어 벽에 걸어 두었다. 귀한 것이라 먹지도 않고 두고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땅콩이 밤사이 사라지고 빈 통만이 마당에 턱 하니 내동댕이쳐 있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아끼고 아끼던 물건을 다시 구할 수 없으니 울분을 삭힐 수가 없었다. 지금 같으면 어디 가서라도 사 올수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시골 마을에서 읍내까지 60리 길도 멀지만 가더라도 판매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울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셋째 형부는 어느 날 찾아온 병마로 일주일에 2번 혈액투석을 받는다. 가족들 양식할 만큼 필요한 최소한의 작물만 재배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도 심지 않았던 땅콩을 심었다. 지금이라도 직접 수확한 땅콩을 처제에게 줄 요량이다. 땅콩을 심을 때와 수확할 때는 결혼식 날 에피소드로 가족들이 배꼽을 잡는 날이다. 세월은 흘러 23살의 새색시는 73살의 할머니가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왜 그리 철없이 행동했는지 민망하다 했더니 "지금 초등학생보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 더 철이 없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 만들었고 그래서 오늘도 그날을 회상하며 웃지 않느냐"고 말하는 언니의 모습은 50년 전 23살의 새색시다.

길을 걷다가 들려오는 좋아하는 음악이나 주위 사람에게 듣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때로는 삶에 활력소가 되듯이 결혼식 에피소드가 지친 삶에 활력이 되는 하루다. 형부, 언니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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