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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가을 일몰을 품고 있는 달서구 성서산단 옆 대명유수지. 맹꽁이 서식지로도 잘 알려진 이 공간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억새군락지. 전망데크에 모여든 사진애호가들은 일몰의 가을을 역광 버전으로 담고 싶어한다. 전망프레임 벤치에 앉은 한 여성은 갓 피어난 억새 한 자락을 들고 자기 가슴인 양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알록달록한 풍경에 길들여진 현대인. 그들에겐 지금 저 흑백사진이 또 다른 보약이 아닐까. |
대명유수지 억새평원. 성서 모다아울렛 근처에 있는 이 공간은 여름 장마 때 성서산단 침수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수량을 조절해 품어주는 홍수조절구역이라 보면 된다. 당연히 습지 구역이라서 수생식물, 그리고 무엇보다 보호종이 맹꽁이 서식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강둑과 성서산단 사이의 폭 150곒, 길이 800곒 공간에 모인 수천만개의 억새꽃이 바람의 일렁임에 따라 자기만의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꼭 음악분수쇼를 연상케 했다. 그곳은 낙동강, 금호강, 진천천, 대명천 등 4개의 강줄기가 합수되는 '달성습지'의 일부분이다. 아직도 상당수 시민들은 대구에 그렇게 너른 억새평원이 있다는 걸 잘 모른다. 그냥 창녕 화왕산 그리고 영남알프스 신불산 사자평 등 전국구 억새평원만 안다. 바람 많은 해질 무렵 꼭 거기를 가보시라. 보온병에 커피를 넉넉히 넣고 정든이와 무릎담요를 함께 두르고 앉아 1시간 정도 지는 해가 연출하는 일몰 라이브공연을 만끽해보시라.
홍수조절 구역인 억새평원
강줄기 만난 달성습지 일부
맹꽁이 서식지로 이름 떨쳐
벌레소리는 별빛보다 맑고
'귀로' '가을시선' '마른잎'
가을이 부르는 노래 떠올라
겨울 재촉하는 바람 불면
산은 한 뼘씩 붉게 물들고
상강이 밀물처럼 들이닥쳐
지역 첫 야생초 갤러리 '아소'
12년 전 조덕순 관장이 오픈
계절 맞는 두세가지만 전시
대구 쌈지공원·월광수변공원
코스모스·억새·갈대 대신
핑크뮬리·팜파스그라스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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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죽령터널과 지척에 있는 충북 단양군 단양읍 상진리 단양관광호텔 맞은편 벨트를 이룬 남한강 코스모스군락지 전경도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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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구내 도심 공원 중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딱인 두 곳은 단연 수성못 산책로와 달서구 도원동 월광수변공원 수밭못 못둑길 옆에 조성된 소공원. 옆 아파트, 팜파스그라스, 낙락장송, 그리고 멀리 소실점으로 보이는 수백미터 못둑길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가을이 부르는 노래
별들이 굳이 이 가을하늘에 있을 이유가 뭐겠는가. 가을날에는 별들도 벌판에서 열린다. 셀로판지처럼 파삭해진 파란하늘, 습기가 무너진 탓에 별빛의 그렁거림은 실시간으로 풀밭으로 내려와 풀벌레로 울고 있다. 벌레소리가 별빛보다 더 명징한 계절이 온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지휘자 카라얀의 포스를 가진 귀뚜라미는 일당백이다. 여름날 산만하게 우중충하게 무질서하게 울던 풀벌레들을 한데 끌어모아 창구를 일원화해준다. 우당탕거리던 여름 풀벌레소리는 가을에 들면서 비로소 일정한 선율을 갖게 된다. 하모니가 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맘을 담은 몇 곡의 노래를 소개할까 한다. 돌아온 추억의 디바, 정미조가 부른 '귀로', 그리고 한영애가 가을을 위해 노랫말을 붙이고 클래식기타리스트 이병우가 곡을 붙인 '가을시선'이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 제자리에 앉는다/ 불타는 열정에 가리워졌던 고운 얼굴들이/ 미소를 보내는 시간.'
60년대 버전의 짙은 우수의 보이스를 가진 태원의 '가을의 연인'의 첫소절이 가슴을 친다. '낙엽이 지기 전에 구월은 가고/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그의 누나 리나 박과 남매 가수로 유명했고 그의 매형이 작곡가 김희갑이다.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모양이다. 신중현이 만들고 박광수가 부른 '마른잎'과 '나뭇잎이 떨어져서'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정말 희귀 음원인데 유튜브에 들어가면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이 곡의 애조와 우수를 알려면 족히 예순은 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지난 목요일은 종일 초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한낮에도 불었다.
그 바람이 한 번 세차게 불 때마다 산의 단풍은 한 뼘 이상 붉게 물이든다. 지난 8월7일은 입추, 그리고 두 달이 지나야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그리고 연이어 무서리가 내리는 상강이 밀물처럼 들이친다. 그럼 상록수를 제외하곤 여느 초목은 한 해 영업을 마쳐야 된다. 그제서야 2020년의 여름시즌도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다. 찬 이슬에 풀이 시들어버리고 찬 서리에 푸성귀와 뭇이파리가 일제히 쇠락지간(衰落之間)으로 빨려들어간다.
올해 첫 단풍은 지난 9월28일 설악산, 그리서 지난 5일 오전 4시 중청대피소에서 올해 첫얼음이 포착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20% 정도 물들면 첫단풍, 산 전체의 80%가 물들면 절정이라 본다. 산림청 예보에 따르면 올해 단풍 절정은 12일 즈음 지리산, 그리고 가장 늦은 절정은 오는 30일 전남 완도 상황봉, 팔공산의 경우 오는 26일 즈음 절정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 아소에서 만난 가을
금요일 아침 나는 12년전 지역 첫 야생초 갤러리 아소를 오픈한 조덕순 관장을 만나러 갔다. 은발의 그녀는 지난 30년 야생화와 동고동락해 온 자연인이다.
이곳은 그 계절적 타이밍에 부합하는 2~3개의 야생화만 선별해 전시한다. 동시에 그 꽃과 어울리는 화가의 작품이 한두 점 걸린다. 아소 갤러리와 비슷한 계열의 건물을 굳이 꼽아보라 하면 콘크리트와 물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이타미 준의 제주도 서귀포 방주교회, 안도 타다오의 서귀포 본태박물관, 강원도 원주에 명물이 된 갤러리 산(SAN) 건물 정도가 될 것 같다.
조 관장이 예전 시골 국민학교 1학년 교실에 가면 볼 수 있는 등받이 없는 앉은뱅이 나무의자를 내밀었다. 나는 사양하고 그냥 맨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갤러리 내부의 천장의 일부분은 하늘 향해 뚫려 있다. 그 넓이만큼의 수조도 바닥에 깔려 있다. 수면은 거울이다. 맞은편 벽에 걸린 마치 마크 로스크의 그림 같은 김택상의 액자, 그리고 그 옆에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15년전부터 아소와 동행하고 있는 남경화재. 9월부터 와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와인빛 가을나무 중 대구가 주력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한 게 바로 '남천'. 그 단풍은 쉬 떨어지지 않고 겨울까지 울긋불긋해 일반 주택가 곳곳까지 파고들었다.
남경화재와 대각선 방향에 15㎝ 높이를 가진 무늬싸리에 매달린 이파리에도 추색이 깃들었다. 뻥뚤린 천장 가장자리에 4인1조의 핑크뮬리가 더없이 푸른 가을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있다. 핑크빛, 그리고 김택상의 블루, 물든 이파리의 앙상블이 물에 그대로 얼비친다. 구름 속에 숨었던 햇살이 한 10초 정도 얼굴을 내민다. 천장 때문에 기하학적으로 분절된 그림자가 벽면에 그대로 아로새겨진다. 환상적 구도가 드러났다. 이때다 싶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조 관장은 "언젠가부터 핑크뮬리가 너무 대단위로 식재가 되다보니 점차 식상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년 전 모종 4포기를 사서 분에 옮겨 옥상 적당한 자리에 놓아 키웠는데 올해 이 가을과 리드미컬하게 잘 밀당하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내 뒤에는 국화과에 속하는 등골풀이 연핑크와 보라색 중간 색조를 피워물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이명미의 붉은톤의 꽃그림이 걸려 있다.
좁은 통로를 통해 잔디가 심어진 정원으로 나갔다. 용담, 윷놀이, 공작구절초, 가실쑥부쟁이, 뻐꾹나리, 물매화, 시월벚꽃, 흰뻐꾹나리, 오색갈대, 홍띠, 애기풍지초, 꽃사과, 황하갈대, 무늬사초, 흰백일홍 등 얼추 100종이 넘는 야생초가 있다.
조 관장이 넌즈시 이런 말을 들려준다. "저 풀들에게 나는 어떤 측면에선 하나님 같은 존재죠. 제가 물을 잘 주지 않고 농땡이 치면 단번에 숨져버려요. 저는 귀한 것보다 흔한 꽃에서 귀한 가치를 발견하려 해요. 세상에 무의미한 건 없다고 봐요."
아소는 최근 대구 수성구청에 매각됐다. 조만간 수성구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조 관장은 수성구청 근처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조만간 야생초들이 집단이주를 하게 된다.
◆핑크뮬리와 팜파스그라스 & 해넘이전망대
5~6년 전부터 대구에서 인기몰이 중인 가을수종이 있다. 바로 핑크뮬리와 팜파스그라스. 이게 등장하면서 그동안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던 코스모스, 억새와 갈대류가 관심권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특히 핑크뮬리는 9~11월 사이 분홍빛 내지 연한 자주색의 꽃이 피어 핑크뮬리라고 부른다. 팜파스그라스는 초원지대를 뜻하는 팜파스(Pampas)와 풀을 뜻하는 그라스(Grass)가 붙어져 억새와 비슷한 풀이다. 각 지자체도 이게 막강한 포토존으로 보고 경쟁적으로 식재하고 있다. 달성군 논공읍 삼거리 낙동강 둔치에 핑크뮬리·백일홍·코스모스가 1만3천㎡(4천여평) 규모에 장관을 수놓고 있다. 경북 울진군 엑스포공원도 2018년 시범적으로 조성해 명소가 되고 있다. 또한 칠곡군 가산면 테마파크 '수피아'도 핑크뮬리 흥행에 성공 중이다.
팜파스그라스가 꽤 미학적으로 심어진 두 포인트가 있다. 한 곳은 신천교 서쪽 끝 두 곳에 마련된 쌈지공원, 또 한 군데는 달서구 도원동 도원지(일명 수밭못)를 둘러싼 월광수변공원 옆 못둑길소공원. 특히 월광공원은 유럽 어느 유명 공원에 필적하는 남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햇살·바람결이 좋은 날 거기 광장 러브(LOVE)포토존 옆 오픈 테이블이나 허리라인을 최대한 살린 S자 벤치에서 흘러가는 구름의 궤적을 팔로워해 보시길. 수변데크 옆 억새와 수크령의 군무와 매칭되는 음악분수의 율동, 가창댐과 맞물린 앞산 정상부와 이어진 청룡산과 삼필봉의 연봉들…. 자신도 모르게 '알프스 못지않은 경관이 바로 지척에 있었네'란 탄성을 질러댈 것이다.
가을로드 마지막 포인트는 지난 8월에 오픈한 대구 남구 대명6동 빨래터공원 옆 해넘이전망대. 이로써 남구는 특이하게 대구시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일출과 일몰 전망대를 겸비하게 됐다. 오후 5시 조금 지나 243m 계단을 걸으면 대구의 서쪽 전역을 볼 수 있다. 밤 9시까지 개방되는데 이 전망대는 경관조명 덕분에 근처 이월드타워와 색을 주고받는다. 근처 앞산분식 옥상에 마련된 하늘정원도 둘러 보시길.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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