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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편(一師一便)] 벌써 가을, 잘 있니?

2020-10-19

국어 시간에 먼 창문을 바라보며 학생들에게 시 한 편 읽어주던 영화 속의 국어교사가 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부터 시작해 공대에서 진로를 바꿔 국어 교사가 된 지 어언 8년째가 되었습니다. 먼 창문을 바라보지는 못해도 시라는 것이 노래이기 때문에 '시는 불러야 살 수 있다'라는 신념 하에 시 교육을 펼쳐왔습니다. 수업 시간에 가끔 흥얼거리기도 하면서요. 하나 고등학교 수업과 중학교 수업에서 시의 주제와 특징, 표현 방법 등에 별표를 치고 또 밑줄을 그어가며 "이건 외워야 된다"라고 외치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보며 반성 또 반성하길 수차례.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시 필사하기'였습니다. 나름 체계적인 규칙을 정해 시 필사하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 필사하기 활동의 작품은 제 마음속의 最愛(최애) 시인 윤동주의 작품이었습니다. '서시'부터 시작해서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 '자화상'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까지.

근 3년간 펼쳐진 이 활동에서 저는 가슴 저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무단지각을 밥 먹듯 하던 한 학생. 학교에 제대로 나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시 필사하기는 꼬박꼬박하던 한 학생.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나고 그 학생의 SNS에 '쉽게 씌워진 시'의 한 구절이 올라오더군요. 그리고는 달려있던 저에 대한 태그. '#윤동주 #담임선생님 #그립다' 우연히 보게 되었던 학생의 SNS를 보고 얼마나 감동 받았던지요. 그 후 우리 학교 학생들의 필사 시 1순위는 '쉽게 씌어진 시'가 되었답니다.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이렇게 선선한 가을날까지 올 줄 상상도 못 했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도, 온라인 수업을 하나하나 챙겨주던 학부모님들도, 온라인 수업을 위해 수업 영상을 찍어 올리던 선생님들. 모두 존경합니다. 지친 마음이지만 천고마비의 계절에 시 한 편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밥 먹듯 무단지각을 하던 그 학생에게 한마디 보내봅니다. "잘 있니~ 쌤도 보고 싶다."

허정동 <대구 달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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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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