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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바보가 바보에게

2020-10-28

이하미
이하미〈연출가〉

예전에 시 창작 수업에서 들은 말이다. "시는 무질서와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들을 들춰내는 작업이다."

평소에는 마치 어둠 속에 묻힌 것처럼 인지하지 못하던 심상이나 진리를 파헤쳐 언어로 정제함으로써 세상에 꺼내놓는 작업이란 뜻이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머리로 다 아는 또렷한 것들보다는, 흐릿한 것들이 삶에 훨씬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각각의 정체를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한 무엇,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워한 무엇, 막연히 두려워한 무엇들처럼. 어쩌면 우리가 태어난 것도 그런 식이었으니 삶이란 참 일관성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응애응애 울면서 세상에 태어났어. 온통 바보들뿐인 무대에 나왔기 때문이지."(리어왕 4막 6장)

바보들뿐인 무대에 등장했다는 건 결국 나도 바보라는 뜻이다. 인간은 모두 바보라는 뜻이다. 아는 것 하나 없는데 막도 내리지 않는 무대 위에서 평생 공연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어쩔 도리 있나, 살 수밖에.

나는 예술가를 동경하면서도 무서워 어쩔 줄을 몰랐다. 보통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가지는 환상이 나에게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예술가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예술가의 실체를 어둠 속에 가려두고 막연히 바라만 보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이젠 경험과 지식이 쌓이는 중이니 자연히 나아지고 있다. 유독 나만 그러겠는가, 다들 똑같고 대상만 다를 뿐이다. 그러니 산다는 건 내가 몰랐던 것들을 깨달아가는 과정, 어둠 속에 있던 것들을 내 앞에 들춰내는 과정이란 점에서 시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적인 개개인의 삶 앞에, 바보인 나는 바보인 당신에게 어떤 예술을 외칠 수 있을까? 무대 앞에서 항상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모 예술가의 일기장 구절로 이 칼럼을 마무리한다.

"태어난 이상 우리의 의무는 최선을 다해 선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일 테다. 어떤 진리도 철학도 내가 이 세상 발 딛고 살아가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쓸모없다. 예술의 실질적인 목표가 어디인지 생각해본다. 세상을 바꿀 필요도 없다. 구원은 셀프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시적인 방법으로 내면에 한 줌 힘을 실어주는 것이면 예술의 존재 의미는 차고 넘친다."
이하미〈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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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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