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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네 토크] '내가 죽던 날' 김혜수 "실제 오랫동안 내가 꿔왔던 꿈…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

2020-11-20

남편 모함으로 뒤흔들린 인생…늘 불면증 시달리다 꾸는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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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괜찮은 줄 알다가 개박살났다."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는 믿었던 남편의 모함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자 분노와 좌절이 혼재된 감정으로 이렇게 내뱉는다. 영화 '내가 죽던 날'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현수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가 실제로 비슷한 일을 경험하면서 한 말이다. 또 현수가 불면증에 시달리며 매번 악몽을 꾸는 장면도 실제 늘 같은 꿈을 꾼 시기를 반영했다. 김혜수가 '내가 죽던 날'을 "운명 같은 영화"라고 말한 이유다. 좌절감과 상처로 힘겨워하며 위로가 필요했던 시기에 위로와 위안을 받았듯, "삶에 지치고, 자존감이 추락하고, 남모르는 상처를 끊임없이 받고 있을 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영화"라고 전했다. 극 중 현수는 한 소녀(노정의)의 의문의 자살 사건을 맡아 그녀의 흔적을 추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닮아 있는 소녀에게 점차 몰입하게 된다.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순천댁(이정은)과는 묘한 연대감을 형성하며 실종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좇는다는 게 줄거리다. 매번 과감하고 흥미로운 시도로 대중의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김혜수는 언제나처럼 영화의 중심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며 극을 이끌어간다.

김혜수

▶이 영화를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점에선가.

"굳이 따지자면 모든 작품이 다 운명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이 좀 더 특별했던 건 제목에서부터 강한 끌림이 있었고, 이 시기에 시나리오가 나에게 온 건 뭔가를 들려주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자살로 추정되는 소녀의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형사와 소녀, 순천댁 등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과 상황, 감정의 여정을 따라간다. 결과적으로 그 인물들의 만남이 모두 이뤄지지는 않지만. 추정적으로 그들이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여정을 얘기하고, 결국에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전혀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묵직하고 뭉클한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내가 느꼈던 이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다면, 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였지만, 나보다 힘든 누군가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라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자살 추정되는 소녀 실종 사건
형사와 소녀, 순천댁을 둘러싼
세 인물의 시선과 감정의 여정

삶에 지치고 자존감마저 추락
상처 받고있는 이들 위한 영화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고된 여정의 시간이었다고 들었다.

"모든 영화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다.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전 세계적인 장벽까지 생겼다. 이런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개봉을 할 수 있게 된 건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사람들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배우들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와 심지어 투자자들까지 시나리오를 보고 진심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투자라는 건 상업적인 수익구조가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하게 되는 건데, 우리 영화는 새롭지만 확인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요소들이 많다. 실제로 어떤 부분은 좀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투자자의 의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배우와 감독, 스태프가 손을 맞잡고 한 얘기는 우리 영화는 이게 본질이기 때문에 '절대 바꾸면 안된다'였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렇게 버텼다."

▶현수는 현실적으로 만날 수 없는 세진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려 한다. 그건 벼랑 끝에 내몰린 현수가 그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 받으려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순천댁과는 보이지 않는 연대를 만들어간다. 그런 두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접근했나.

"우리 영화에서 주요 인물을 꼽자면 현수, 세진, 순천댁인데 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또 다른 무언가와 연결돼 있다. 그중 현재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순간을 보내고 있는 건 현수와 세진이다. 하지만 그 상황은 본인들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인 양 모든 걸 떠안았다. 복직을 앞둔 현수가 이 사건을 맡겠다고 한 건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서인데, 일이라도 몰두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함 때문이다. 사실 거의 자살로 종결된 사건이라 보고서만 쓰면 되지만 현수는 그 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저 아이의 저 얼굴을 안다. 보기 싫었던 괴로운 순간의 내 얼굴'이라며 자신을 이입시키고 동일시한다. 현수와 마찬가지로 세진은 가장 신뢰했던 사람이 남긴 상처를 안고 있다. 반면, 순천댁은 앞서 크나큰 고통을 겪은 인물이다. 절망적인 선택으로 목소리를 잃었지만 비슷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이 인물들 간 촘촘하고 깊이 있는 연대감이 느껴졌다. 이를 관객이 납득 가능하게 보여주는 게 과제였다. 드러내지 않은 것들을 드러내고, 만나지 않은 사람끼리의 연대감을 보여준다는 게 연기는 물론이고, 연출로도 굉장히 막연하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내야 했다. 미약하지만 하나하나 작은 디테일의 힘들이 만났을 때 가공할 폭발력과 파장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운 좋게 좋은 배우들을 만나 더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순천댁과 마주하는 장면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현수와의 만남에서 현란한 말로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눈빛과 몸짓으로 묘한 감응을 일으켰다.

"현수의 입장이라면 순천댁이 마냥 고맙게 느껴지지 않을까. 상처받고 버려진 아이에게 내밀어준 손길이 고맙고, 그게 결국은 자신(현수)과 동일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순천댁과 만나는 신이 많지는 않다. 심지어 그는 대사도 없다. 그렇지만 늘 긴장했다. 연기 잘하는 정은씨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과 기대감이 상존했다. 한 번은 새벽 일찍 순천댁과의 만남 장면을 생각하며 현장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먼 발치에서 수레를 끌고 오는 정은씨를 보게 됐는데 누가 봐도 딱 순천댁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냥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정은씨도 울고 있더라. 뭔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순천댁인 동시에 이정은이라는 사람, 현수임과 동시에 김혜수라는 사람의 만남이 캐릭터로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모종의 연대감 같은 것이 묘하게 일치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 너무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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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설득시키는 배우의 입장에서 늘 연기적 접근을 고민할 텐데 이번 작품에선 어떤 부분을 고민했나.

"현장이 매 순간 두려운 이유다. 시나리오를 보고 본인은 느꼈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연기적으로 재현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건 배우에게 남겨진 숙제다. 그래서 늘 나 자신에게 먼저 '괜찮아?' '느껴져?' '와 닿아?'라고 반문한다. 이번 작품의 경우 현실적인 공감을 줘야 했다. 전작 '차이나 타운' '타짜' '미옥' 등이 영화적 설정이 중요한 캐릭터였다면 현수는 리얼리티를 보여줘야 했기에 애초 접근방식부터 달랐다. 다시 말해 본질에 닿느냐, 안 닿느냐의 문제였다. 본질이라는 건 엄청나게 무거운 단어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정말 본질에 닿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고 의심하면서 접근했다."


상황은 달라도 나 같았던 현수
심적으로 공감되고 쉽게 이입

데뷔 34년차, 늘 부족하다 생각
동료들과 수다 떠는 재미 찾아
음악·영화 얘기로 보낼때 행복



▶그 점에서 여백을 많이 열어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현수는 세진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현수는 실제 당신의 모습이 투영된 캐릭터라고 말했는데.

"상황은 다르지만 현수가 정말 나 같았다. 물론 나와 같다고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심적으로 공감했고 쉽게 이입됐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이 현수의 시선과 입장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나의 실제 경험이 일정 부분 투영됐는데, 현수가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세진에게 왜 집착하는지를 설명하는 오피스텔 신도 그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한다. 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잠에서 깨면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상태인 현수의 괴로운 모습은 실제로 꽤 오랫동안 내가 꿔왔던 꿈이고 그 상황이 현수의 입장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장면에 나온 대사 일부를 내가 썼다. 굳이 괴로웠던 순간을 꺼내서 영화에 활용하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경험도 배우에겐 자산이고, 인물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연기자로 데뷔한 지 34년차가 됐는데 여전히 연기는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연기를 잘한다는 기준은 뭔가.

"모르겠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잘한다' '너무 좋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 '분노가 생기네' 등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면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얼마나 어디까지 정직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100가지를 준비했어도 다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연기다. 미리 계획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성취감을 맛볼 때도 있다. 그러려면 집중력과 진짜 감정의 진심, 매우 적절한 기교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한다고는 하는데 늘 뭔가 부족하고 처져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보면 그래서 존경스럽고 부럽다. 그럴 때마다 '난 정말 여기까지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또 좋은 시나리오를 보면 언제그랬냐는 듯 다시 하고 싶어진다. 매번 그렇게 반복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웃음)

▶그래도 배우 김혜수는 여전히 많은 후배들의 롤 모델이자 워너비다.

"롤모델 등 누가 나한테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압박을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다.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책임감이나 부담을 가지지는 않는다. 솔직히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 거다. 나도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하다. 좋은 건 나누면 좋지 않겠나."

▶연기자가 아닌 자연인 김혜수가 찾은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다 같이 모여서 수다 떠는 재미를 뒤늦게 알았다. 오래전 TV 토크쇼를 잠시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동료 배우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친구가 됐다. 그들과 음악과 영화 얘기를 하면서 시간 보낼 때가 즐겁고 행복하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응원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연대감도 생겼다. 이런 사람들을 마음으로 얻은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니까 이후 감정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게 무척 편해졌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소중한 사건 중 하나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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