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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문재인의 포르투나와 비르투

2020-12-03

'촛불 물결' 타고 청와대 안착
'판문점의 봄'…지방선거 낙승
호재 된 코로나로 총선 압승
타고난 運 비해 통치력 의문
知鑑 부족·불통에 갈등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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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가 말했다.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고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었다면 프랑스엔 볼테르가 있다." 이를 이탈리아가 되받았다. "우리에겐 마키아벨리도 있다." 통치와 정치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권력자 로렌조 메디치에 '군주론'을 헌정했다. 그러나 메디치의 인정을 받아 공직에 복귀하려던 마키아벨리의 기대는 좌절됐다. '군주론'은 지금까지 수없이 읽히고 해석되고 반박당하고 숭배됐지만 정작 마키아벨리의 말년은 쓸쓸했다. 무덤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피렌체의 마키아벨리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는 그의 존재감을 응축한다. '어떤 묘비명도 이 위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또 다른 명저 '로마사 논고' 등에서 일관되게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조명했다. 이탈리아어 비르투(virtu·덕)의 어원은 vir(남성)다. 강한 남성의 힘 virtu는 덕(德)의 속성이다. 포르투나(fortuna)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여신으로, 어원은 fortune(운)이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 즉 운을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군주는 강력한 비르투를 갖춰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덕성·능력·결단력은 물론 알렉산드로스·카이사르 같은 고대 영웅들의 용맹과 대범함, 심지어 잔혹함·사악함까지 비르투의 범주로 봤다.

문재인 대통령의 포르투나와 비르투는 어떨까. 지난 3월 초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한국에 빗장을 건 나라가 순식간에 100개국을 넘었다. 이 무슨 개망신인가 싶었다. 한데 식스센스급 반전이 일어났다. 유럽과 미국에서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더니 졸지에 한국은 방역 우수국가로 변신했다. 코로나19가 4·15 총선 여당 압승의 일등공신이 될 줄이야.

2018년 6월 지방선거는 또 어땠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걷는 장면은 드라마틱했다. '판문점의 봄'을 목도한 표심은 여당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집권과정에서도 행운의 여신은 문 대통령 편이었다. '촛불 물결'에 올라탄 문 후보는 순풍에 돛단 듯 사뿐히 청와대에 안착했다. '대깨문' '문빠'로 통칭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받쳐준다는 것도 대통령의 홍복이다.

타고난 포르투나에 더해 비르투까지 갖췄으면 금상첨화이련만 아쉽게도 비르투는 부족해 보인다. 지감(知鑑) 결여도 그중 하나다. 지감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뜻한다. 강남 아파트 두 채를 움켜쥔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용렬함을 간파하지 못했고, 얼치기 비전문가 김현미를 국토부 장관에 기용해 부동산 대란을 촉발했다. 불통도 심각하다. 취임 후 3년 반 동안 공식 기자회견은 여섯 번에 불과했다. 전세난과 아파트값 급등으로 온 나라가 들썩여도 몇 달째 김현미 장관의 대면보고는 없었다. '불통의 아이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방관자적 자세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추미애-윤석열의 극한 대립에도 명시적 언급이 없었고 김해신공항 백지화 때도 침묵을 지켰다. 오불관언? 국정 최고책임자라면 갈등을 조율하고 정치적 부담까지 지는 게 옳다. 조정자·해결사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수렴청정도 아니거늘 왜 뒤에 숨어있나. 문 대통령은 마키아벨리의 군주상(君主像)처럼 사자 같이 용맹하지도 여우같이 교활하지도 않다. 그냥 뜨뜻미지근하다. 그래서 어느 정치인이 문 대통령을 참모 스타일이라고 했나 보다.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지난해 7월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줄 때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라"고 말했다. 그건 반어법이었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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