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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준의 바다인문학] 명태

2021-01-01

칼바람에 얼었다 녹았다…스무 번의 혹한을 견뎌내면 황태가 됩니다
명천 태씨가 잡아 붙여진 이름
말린 기간따라 흑태·먹태·황태
20㎝ 이하 새끼 명태는 노가리
조선시대 쌀과 교환 '명태무역'
국가가 장려, 사무역으로 확대
60년대 한번에 1천마리도 잡혀
목숨걸고 '선넘어' 조업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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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신의면 섬마을에서 설 명절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말리고 있는 명태.

강원도 주문진 등대마을에서 원산포로 명태잡이를 다녔던 노인을 만났다. 나름 배를 탔던 많은 노인을 만났지만 그들의 명태잡이 이야기는 생경하고 신기했다. 그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무용담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바다와 파도를 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남북으로 나누어진 분단이었다. 그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삶이고 생계였다. 명태는 대구목 대구과에 속하는 냉수성 어종이다. 우리나라 동해 북부, 일본 북부, 오호츠크해, 베링해 등에 서식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서식처가 동해 북부에서 베링해로 그리고 북극해로 확산하고 있다. 서해가 조기라면 명태는 동해를 대표하는 바닷물고기였다. 강원도 대진항이나 거진항에 땔감처럼 명태들이 쌓였었다. 산골 어느 오일장 어느 집 밥상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우리 명태지만 지금은 러시아산만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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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황태마을 덕장. 내장을 꺼낸 명태가 칼바람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건조되고 있다.

◆명태, 그 이름만 60개라니

명태는 지역, 잡는 방법, 시기, 크기, 가공상태 등에 따라 정말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어류학자 정문기는 20가지를 소개했지만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사한 '명태와 황태덕장'에는 60개의 이름이 소개돼 있다. 함경도에서는 망태·조태·왜태·애기태·막물태·은어바지·동지바지·섣달바지라 불렀다. 강원도에서는 선태·강태·간태라 했다. 서울에서는 동태·강태·더덕북어라 했다. 강원·경기 이남에서는 동건태를 '북어'라고 불렀다. 또 북해도에서 들어오는 건명태를 북태, 봄에 잡힌 명태를 춘태, 특히 4월에 잡히면 사태, 5월에 잡히면 오태라고 했고, 끝물에 잡은 명태는 막물태라고 했다.

크기별로 새끼명태는 앵치, 산란하고 살이 없이 뼈만 있는 명태는 꺽태라 했다.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라 했다. 노가리라 하는 명태 새끼는 20㎝ 이하를 말한다. 소금에 절인 명태는 염태나 간명태라 했다. 건조 상태에 따라 4~5개월 잘 말리면 영태, 한 달 이내로 짧은 기간 동안 말린 것은 흑태, 흑태를 코에 끼워 엮은 것은 코달이, 몸통을 엮은 것은 엮걸이라 했다.

명태는 명실공히 조선의 물고기다. 중국에서는 명태가 잡히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최근 명란을 만들기 전까지 명태에 관심이 없었다. 한자어 명태, 일본어 멘타이 모두 조선의 명태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명태라는 이름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다. 효종 3년(1652) '승정원일기'에 '강원도에서 대구알젓 대신 명태알젓이 왔으니 관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임하필기'(1871)에 '명천의 태씨가 잡아 명태라 불렀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많은 이름 중 함경도에서는 '망태'라고 불렀던 것이 명태와 비슷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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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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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식혜를 넣은 속초의 비빔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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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조리의 으뜸으로 꼽히는 생태탕.

◆명태는 어찌 팔도로 팔려 나갔나

명태는 팔도로 팔려 나갔다. 흉년이 심할수록 명태무역이 활발했다. 기후변화와 차가운 한류에서 서식하는 명태와 농작물의 냉해의 관계성을 엿볼 수 있다. 조선조 남부지방의 쌀과 함경도 명태를 교환하는 '명태무역'이 생겨났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이게 가능했던 것은 명태의 동건법(凍乾法)과 유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변사등록'(1730)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함경도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와 남도의 쌀을 교환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명태 값을 싸게 팔거나, 배 삯을 싸게 해주는 장려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명태무역은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흥리(興利)'와 '상반(商販)'을 목적으로 하는 사무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교환되었던 품목은 쌀 외에 돈·포목·곡물·소금·패물 등이었다.

명태 몸통은 동건법으로 가공을 하고 알과 내장은 염장법으로 처리했다. 잡은 명태가 뭍에 오르면 아가미 밑에서 항문이 있는 꼬리 부분까지 절개했다. 이를 전문으로 하는 부녀자들이 있었다. 품삯으로 알을 가져가 명란젓을 만들었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의 가공법이 동건법이다. 내장을 꺼낸 명태는 덕장에 널었다. 추위가 심하고 바람이나 눈이 많은 곳이 좋다. 명태 속에 수분이 추워 얼고 다시 풀리면서 부풀어 푸석푸석해진 북어가 상품이다. 명태가 스무 번쯤 얼고 녹아 만들어진 것이 '황태'다. 황태에 이르지 못한 것을 먹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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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는 망자에게 올리는 제물이기도 하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당포마을 당산나무에 제물로 올린 명태.

◆명태, 문지방에 걸리다

명태는 산자만이 아니라 망자에게도 올리는 제물이었다. 동태포를 떠서 육전과 함께 생선전을 만들어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탕에도 마른 명태를 찢어 넣었다. 당제나 풍어제 등 마을굿이나 개인 고사에 명태는 꼭 준비해야 하는 제물이었다. 조기의 신, 임경업 장군을 모신 백령도의 충민사, 사량도 남해안 별신굿, 대변항 동해안별신굿, 주문진의 어진성황당에도 어김없이 명태가 올랐다. 그뿐인가. 법성포 허름한 밥집 문지방에도, 새로 배를 무어 진수식을 하는 배 위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명태,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알은 명란(明卵), 창자는 창란젓으로 가공해 소비됐다. 그리고 간장은 어유(魚油)를 만들었다. 작은 새끼마저 술안주인 노가리로 만들어 먹었다. 명태조리의 으뜸은 생태탕이다. 고성의 생명태로 끓여주던 생태탕, 겨울철 설 명절 세찬으로 들어온 동태를 망치로 두들겨 끓인 동태탕, 이제 그 맛은 찾을 수 없다.

명태음식 중 고성과 강릉에서 맛본 명태식혜와 명태김치가 새롭다. 서해에서는 김장할 때 조기나 황석어를 넣기도 하니 동해에서 명태를 넣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남해에서는 볼락을 김치에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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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지면 그 맛도 시나브로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명태 만진 손을 씻은 물로 사흘 찌개를 끓인다'는 말이 있다. '인색한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또 북어 한 마리 부조한 놈이 제사상 엎는다는 속담이 있다. '하찮은 것 주고 지나치게 생색을 내는 사람'을 칭하기도 한다. 명태 한 마리 두고 너스레 글과 말이 많아졌다. 이럴 때 '노가리까지 말아라'라고 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핀잔이다.

동해 주문진 뱃사람들은 남북 분단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원산 앞바다까지 나가서 명태를 잡았다. 초저녁에 출발하면 새벽에 원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주문진에서 출발하는 배만 40여 척이었다. 묵호나 삼척에서 올라오는 배도 있었다. 보통 원산까지 가면 네다섯 바리를 잡았다. 한 바리는 200마리를 말한다. 우리 바다에서 잡는 것에 몇 곱절을 더 잡을 수 있었으니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북한군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돌아와 고문과 옥살이를 겪기도 했다. 명태가 '웬쑤' 같지만 지금도 마냥 그립기만 하단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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