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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문화산책] 삶이 예술이 되다

202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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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숙〈미술평론가〉

예술가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안정적이지 않다. 보통의 삶을 포기하면서도 예술을 선택한 까닭은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과 열정 때문일 것이다.

1864년 프랑스 알비 지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툴루즈 로트랙((Toulouse Lautrec)은 타고난 신체결함과 낙상사고로 152㎝ 정도의 작은 키로 살아야만 했다. 외부 활동을 맘대로 할 수 없어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았다. 이후 1884년 몽마르트르로 거처를 옮겨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당시 몽마르트르는 파리와 접근성이 좋은 데다 임대료가 저렴했기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덕분에 몽마르트르는 예술의 중심지로 떠올라 사교의 장인 댄스홀 '물랭루즈'가 개업하는 계기가 됐다.

로트랙은 거대하고 화려한 댄스홀 물랭루즈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물의 모습을 자유롭게 나타냈으며 사진술의 발명과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대담한 구도를 선보인다. 또 버림받은 사람들의 내면을 담담히 표현하기도 했다. 세밀한 관찰력과 신선한 구도는 포스터에서 진 면목이 드러난다. 그는 1891년 '물랭루즈 라 굴뤼' 라는 첫 포스터로 세간에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라 굴뤼(La Goulue)는 물랭루즈의 댄서였는데, 포스터 중앙에 핵심적으로 그려졌고 관객들은 검은색으로 표현돼 멀리서도 주제가 눈에 띄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레이아웃은 현대 포스터의 시초가 되었다.

로트랙은 불규칙한 생활과 과음 탓에 36세로 생을 마쳤지만 유화, 포스터, 수채화, 드로잉 등 수천 점이나 되는 역작을 남겼다. 작품에 등장하는 몽마르트르와 물랭루즈의 하층 노동자 여성들의 모습에선 강렬하지만, 상처 입은 내면이 엿보이며 삶의 숙연함과 슬픔이 묻어난다.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예술적 열망은 그로 하여금 피폐하지만, 열정을 꽃피울 수 있는 예술가의 삶을 택하게 했다.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로트랙은 짧지만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그의 작품들은 훗날 큰 영감과 울림을 주었다.

나는 로트랙의 인생이 담긴 예술작품과 작품 속 슬픈 내면을 감상하면서 안정적인 삶과 힘겨운 예술가로의 삶, 그 선택의 갈래에서 고민하는, 로트랙을 닮은 열정 가득한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구본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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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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