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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쓰는 사람 단상

2021-02-18

프로필단정
김살로메 〈소설가〉

돈 되는 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굳이 짚자면 나는 전업 작가다. 외부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가끔 이력서나 프로필을 요청해올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책자를 발간하는 말미에 간단히 작가 소개를 해야 하는데 직책을 적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내세울 만한 직책을 지녀본 적도 없지만 쓰는 자라는 내 정체성과 무관할 것 같아 '소설가'라는 세 음절만 명쾌히 밝혔다. 다른 사람들은 직책을 적었는데 나만 달랑 소설가라고만 적은 게 적잖이 신경이 쓰였는지 상냥하고 배려 깊은 담당자가 전화를 해왔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 나는 웃으면서 그 세 음절보다 깔끔한 프로필은 없으니 그대로만 써도 괜찮다고 말했다. 혹 그것으로 '빈약'하다면 펴낸 책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쓰는 사람에게 왜 직책 같은 게 필요할까. 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도 알 만한 작가라면 소설가라는 세 음절의 프로필조차도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유명할 수는 없다. 해서 그 작가의 정체성을 뒷받침해줄 만한 배려심으로 보조 정보를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글로써, 책으로써 자신을 말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직책 같은 건 그다지 필요치 않다. 작가에게 정직한 명예는 오롯이 읽고 쓰는 열정으로 보답받을 때다.

모든 작가들이 제 이름을 드높일 수는 없다. 이름자만 들어도 대다수가 아는 작가는 쓰는 이들의 일 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십구 퍼센트의 덜 알려진 작가들이 작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내기는커녕, 2쇄조차 찍지 못한 작가라고 알짜배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말했다. 작가와 작가 아닌 것의 기준은 현재 글을 쓰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가늠된다고.

변방의 글 쓰는 사람에게 소설가라는 너무 간결한 타이틀이 붙으면 대중이 느끼기에 빈약한 정보로 읽히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쓰는 자로서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읽고 쓰는 한 그 정체성에 금이 갈 리 없기 때문이다. 떳떳하지 못할수록 이력서가 복잡하고 내면이 허할수록 명함에 군것들이 박힌다. 전업 작가는 빈한할 수는 있어도 결코 빈약하지 않다. 이름 뒤 괄호 안에 붙는 수식어조차 불필요한 우뚝한 날들이면 좋겠지만, 그 간결한 수식어가 올곧은 의지를 말하는 것이라면 더 바랄 게 무얼까.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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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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