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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방통고·대구고 학생들 손편지로 세대 장벽 허물어"

2021-02-22

■ 영남일보 '2020 세대공감 공모전' 銅賞 대구고 권기범 교사 수기
요일별 교실 공유 두 학교 학생들
공부 공감대로 7개월째 소통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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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구고 학생에게 보낸 편지. 〈권기범 교사 제공〉
일요일 아침 8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연필을 쥔 주름진 손으로 부지런히 공책에 무언가를 적는다. 수십 분이 지나고 잠시 허리를 편다. 지척에 친구들이 찾아와서 안부를 묻는다. 가정사와 직장 생활을 묻는데 종이 친다. 다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수업 내용을 받아 적는다. 오후 녘, 하루가 끝나고 2주 뒤에 다시 만나자며 서로에게 인사하고 교문을 나선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들이 교육을 받는 이곳은 '대구방송통신고등학교'다. 대구방통고의 정식 명칭은 '대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다. 나는 이곳에서 6년째 한문 수업을 하는 교사다. 평일에는 대구고 청소년에게 수업하고 일요일에는 방통고 만학도에게 배움을 전한다.

올해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구도 그 풍파를 지나쳐가지는 못했다. 힘든 시간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것은 편지를 통한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이었다. 작게 보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그 편지가 세대 간 벽을 넘고 힘든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어느 날에 대구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참고로 난 평일에는 대구고 1학년 1반 담임, 휴일에는 방통고 2학년 3반 담임이다. "너희들은 시험이 모두 끝났지? 그런데 우리와 함께 교실을 사용하는 방통고 학생들은 다음 주가 시험이란다. 너희가 그분들에게 시험을 잘 치라는 격려의 편지를 써 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에 아이들은 다소 황당하면서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각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누가 이 편지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편지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공감대가 형성됐고,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이야기를 한 자 두 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 편지 꼭 전해주세요. 제가 우리 부모님한테도 써 본 적 없는 편지예요"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뭔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됨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방통고 수업이 있는 일요일. 방통고 학생들은 중간고사를 치르기 위해 새벽밥을 먹으며 등교를 했고, 시험을 치르기 전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평일에는 손자 같은 학생들이 앉아서 공부하는 것 다들 알고 계시지요? 그 아이들이 여러분에게 오늘 시험 힘내라고 편지를 썼네요. 제가 전달할 테니 댁에 가셔서 꼭 읽어보세요." 그렇게 나의 우체부 역할은 시작됐다.

또 몇 주의 시간이 지났을까. 방통고 수업이 있는 날 학생들이 삼삼오오 등교를 시작했다. 그런데 저마다 손에 편지 한 장을 들고 나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이거 학생에게 꼭 전해주세요. 제가 난생 처음 편지를 써 본 거라 참 기분이 좋더군요." "선생님. 맞춤법이 틀렸는데도 모르겠어요. 부끄럽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참 따뜻하여 답장을 썼으니 꼭 전해주세요."

6월에 시작한 편지 주고받기는 7개월 동안 이어졌고 그사이 많은 학생이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고 소통하고 있었다. 훌륭한 한의사가 되겠다는 아이의 편지에 차별과 편견 없이 아픈 사람을 잘 치료해주라는 조언을 담고, 공부에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아이의 편지에 나이가 많아서 공부를 해보니 열정은 있지만 젊은 나이에 비해 능률이 오르지 않으니 때를 놓치지 말라는 조언을 담는 등 청소년이 쓴 편지에 만학도들은 자신의 인생 지혜를 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 하나가 있었다. 방통고 학생 중 한 분이 아이들과 주고받는 편지쓰기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면서 방송국에 사연을 보낸 것이었다. 만학도는 "젊은 아이들과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고 비록 배움의 끈은 짧지만, 그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적어 오해와 다툼이 생기게 되는 경험을 한다. 사실 돌아보면 그것이 소통의 부재이지 마음의 장벽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지금 하는 것은 손으로 쓴 글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하는 가슴 따뜻한 대화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비록 그들과 살아온 세대는 다르지만 소통하는 방법만 알게 된다면 우리는 험난한 이 시국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식을 전하는 것보다 지혜를 나누는 것이 더 보람된 것임을 새삼 느끼며 작은 편지 하나로 전하는 세대 공감의 실천을 오늘도 내일도 이어나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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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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