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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조선잡사'...조선 시대 천대받던 공상 직업인들의 이야기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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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종·김동건·장유승·홍현성 지음, 민음사, 2020.10, 343면, 1만8천원)

이 책은 조선 시대의 '사농' 말고 '공상'의 직업을 주제로 다루었다. 강문종 외 3명의 저자는 대학은 달랐지만 모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조선시대의 사농(士農)을 제외한 공상(工商)의 직업 67가지를 가려 뽑아 관련 일화를 정리해 '조선잡사(朝鮮雜史)'라고 책 제목을 정했는데, 이것은 '잡(job)'의 역사이며, '잡(雜)'스러운 역사라고 밝히고 있다.

67가지의 직업 중에서 특이한 직업 몇 개를 보면 먼저 여성 직업으로 '수모'가 있다. 수모는 수식모(首飾母)의 준말로 지금의 여성 헤어 디자이너다. 여기에 화장과 의상도 담당해 부잣집 혼례에는 빠질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다음으로 극한직업의 하나로 '월천꾼'이 있었다. 월천꾼(越川軍)은 섭수꾼(涉水軍)이라고도 하는데, 교량이 드물던 시절에 길손을 등에 업거나 목말을 태우고 시내를 건너준 뒤 품삯을 받는 직업이었다. 물론 가마나 무거운 짐도 옮겼다. 월천꾼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여름철 시냇물이 불어날 때나 얼음이 단단하게 얼기 전과 녹기 시작하는 대목에 주로 일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이한 직업으로 '거벽'이 있었다. 거벽(巨擘)은 과거 시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일종의 대리 시험 전문가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영남의 거벽 유광억은 부잣집 아들의 과거 시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합격시켜 주고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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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멀리 여행할 때 말을 빌리는 것을 세마(貰馬)라고 했다. 당시 말은 노비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말을 먹이고 관리하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말을 소유하려면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래서 말을 빌려주는 서비스업자를 세마꾼 또는 세마부라 불렀다. 지금의 렌터카 비슷한 운수업자다. 세마를 내면 견마잡이라는 말몰이꾼이 따라붙었다고 한다.

조선의 기술자와 전문직 중에서 그런대로 짭짤하게 인정받은 직업은 종이를 만드는 지장(紙匠)과 인삼을 팔러 중국으로 가는 역관(譯官)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사람의 생활 속에는 종이가 특별히 많이 필요했다. 책과 편지는 물론이고 벽지, 장판, 창호지에 종이로 만든 옷과 갑옷을 비롯해 쓰이지 않는 데가 없었기에 초상이 나면 종이로 부조하는 풍습도 있었다.

조선의 역관은 사신을 보좌하며 통역을 비롯해 현지 관리와 접촉하는 다양한 실무를 맡았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급료나 필요경비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짊어지고 다닐 만한 분량인 인삼 여덟 자루(약 80근)를 거래할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역관들은 이 인삼을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져가 비싼 값에 팔고 양반들이 필요로 하는 서적이나 비단·모자 등의 사치품을 국내에 들여와 되파는 중개무역으로 큰 부를 얻었다. 이 밖에도 사형집행자 '회자수', 분뇨처리업자 '예덕선생', 소설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 소매치기 '표낭도', 군대 대신 가는 '대립군' 등 희한한 직업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선비와 농부 이외의 모든 공상업인은 천시의 대상이었다. 막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직업인이었으면서도 한없이 갈취당하고 무시당했다. 그래서 우리의 산업은 피폐했고 국력은 허약했다. '조선잡사'를 읽어보면 조선 시대에 공업과 상업에 종사했던 선인들의 슬픈 역사를 엿볼 수 있어서 가슴 아프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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