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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여행] 전남 순천 별량면 학산리의 바다, 그리고 마을…하늘이 내린 정원 순천만, 포구마다 평화가 흐른다

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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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마을의 해안에는 길고 두둑한 둑이 뭍과 바다를 경계 짓는다. 둑에 오르면 바다와 갈대밭과 갯벌이 아래에 펼쳐져 스스로가 훌쩍 자라난 느낌이다.

기억이나 추억에 의해 선택된 이미지는 상상력으로 형상화된다. 그것은 자의적이고, 비좁고, 채색되고, 순수한 상상보다 언제나 더 이기적이어서 매우 높은 확률로 현실에 의해 파괴된다. 그러나 순천만의 바다는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평화로웠다. 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릴 때에도, 텅 비어 무음처럼 고요할 때에도,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곳에 대한 추억은 오래 지속되는 휴식이다. 더 훌륭해지기를 바라지 않고, 더 나빠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고, 그저 거기에 있기만 하면 족한 믿을 만한 구석. 그 망망한 구석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소금 생산지 유명했던 장산마을
넓은 갯벌·갈대 눈 아래 펼쳐져
화포마을 앞바다 남도의 섬 도열
꽃피는 계절이면 온통 들꽃세상


◆장산과 우명의 바다

순천만의 소리굽쇠 같은 해안선 서쪽에 화포(花浦), 우명(牛鳴), 장산(長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닷가 마을이 있다. 전남 순천 별량면(別良面) 학산리(鶴山里)의 자연마을들이다. 장산의 서쪽 내륙에는 학서(鶴捿)마을이 있는데 두 마을의 이름을 합해 학산리다. 학서마을은 원래 바닷가 마을이었지만 간척이 되면서 내륙 마을이 되었고 장산은 원래 섬이었다가 바닷가 마을이 되었다. 장산에서 우명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단순한 해안선과 부드럽게 상승하고 하강하는 굴곡이 주는 안온한 고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대나 용산과 같은 심장 뛰는 이름과 안풍들의 뿌듯한 수평면을 먼눈으로만 어루만지며 '다음에 만나자'하는 애원의 심정을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장산마을은 마을 북서쪽에 있는 '진등'의 이름을 따서 '장산'이라 했다고 한다. 진등이란 '긴 산등'이다. 어쩌면 이 진등이 내가 좋아하는 고동의 진원지일지도 모르겠다. 장산은 또 옛날 소금이 많아 돈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장산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화염, 즉 자염을 구웠다. 갯벌을 쟁기로 갈아 해수를 머금게 하고 간꽃이 피면 뻘 흙을 모아 해수와 함께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염전은 1970년대 논으로 바뀌었고 일부는 새우양식장이 되었다. 지금도 폐염전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한다.

장산의 해안에는 길고 두둑한 둑이 뭍과 바다를 경계짓고 있다. 둑 아래에 서면 양쪽에 키 큰 갈대들이 빼곡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끝 모를 길과 가없는 하늘이 전부다. 망연함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기꺼운 단념만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둑 위로 오르면 바다와 갈대밭과 갯벌이 아래에 펼쳐져 스스로가 훌쩍 자라난 느낌이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갯벌 체험장은 철새들을 위해 겨울 동안 출입을 금한다. 단지 갈대를 엮어 만든 문이 출입을 막고 있지만 그것은 아테네 신전의 기둥들만큼이나 엄중하다. 넓은 갯벌을 무심히 밀어내며 보이지 않게 흐르는 갯골의 곁에는 깨끗한 널배들이 누운 채 밧줄을 느슨하게 뻗어 대나무 장대를 붙잡고 있다. 오래 지속되는 휴식을 나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천히 오르며 언제 장산을 지났는지도 모르는 사이 우명마을에 들어서 있다. 마을 뒷산이 소가 우는 형국이라 '우명'이라 했다 하고, 소가 '움머'하고 운다고 우명이라 했다고도 한다. 처음에는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했다 하여 '옴막구미' 또는 '움마구미'라 불렀단다.

우명의 바다는 멍처럼 푸르다. 하늘과 바다 건너 와온해변까지 번져 나간 푸름이다. 그 속에서 나도 시원하게 두들겨맞은 듯 새파래진다. 근사한 존재감이라든가 기품이라든가 하는 개별적이고 인간에 속해 있는 표현들은 옳지 않다. 모두가 하나다.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린 것만 같은 갈대 군락은 환형으로 점점이 떠 있다. 저들은 둥근 모양을 유지하면서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를 위한, 서로를 위한 원인처럼 운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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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포구, 화포의 바다. 어느새 물이 들어 갯벌은 사라지고 둥근 바다만 반짝인다.

◆꽃 피는 포구, 화포

오르던 길이 다시 천천히 내려갈 즈음 화포마을 표지가 보인다. 길은 마을의 가장자리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 선착장 앞에 다다른다. 그곳에는 신년 행사를 치르는 일출 광장이 있고 방사탑처럼 돌을 쌓아올린 소망탑이 서 있다.

방파제 끝에 서면 마을 전체가 정면으로 보인다. 오른쪽에서 급한 듯 내려온 길은 마을 앞으로 일직선을 긋다가 왼쪽으로 모서리를 만들며 꺾인다. 모서리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철제 테두리로 보호돼 있는데, 꼼꼼하게 꼬아진 새끼줄이 가닥가닥 풀어 헤쳐진 채로 점점 근육질로 자라난 것 같은 모습이다. 금줄은 보이지 않지만 신목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굽어진 길의 뒤쪽에는 몇 채의 집들이 있고, 길은 다시 정면으로 잠시 누웠다가 천천히 올라간다. 집들은 그 둥근 길가에 차곡차곡 납작하게 포개어져 있다. 작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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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마을의 바다는 멍처럼 푸르다. 하늘과 바다 건너 와온해변까지 번져나간 푸름이다.

화포마을의 원래 이름은 '쇠리'였다고 한다. 쇠는 '소'를 일컫는다. 마을이 소의 형상이라 그리 지어졌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화포와 쇠리가 같이 쓰였는데, 이후 마을 앞 바닷가에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하여 '화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화포의 뒷산은 봉화산이다. 선착장 옆의 낮은 언덕은 꽃등이라 불린다. 꽃 시절이 되면 봉화산과 꽃등에는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났단다. 그래서 화포다. 꽃 피는 포구. 멀리 남도의 섬들이 줄 지어 서 있다. 넘자도, 장도, 대여자도, 소여자도가 길게 늘어서 있다. 화포의 바다는 봉화산과 꽃등과 섬들에 둘러싸여 있다.

어느새 물이 들어 갯벌은 사라지고 둥근 바다만 나는 모른다는 듯 반짝인다. 물량장에는 초록의 그물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사라진 갯벌처럼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방금 도착한 사람이 어제부터 그러했다는 듯 바다를 보고 있다. 꽃 피는 포구에 꽃은 피지 않았다. 바다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 방향으로 가다 남원분기점에서 구례·순천방향으로 간다. 순천IC로 들어가 2번국도 벌교방향으로 가다 상림삼거리에서 화포해변 방향 일출길로 들어서면 된다. 장산, 우명 지나 화포다. 순천에는 남도삼백리 길이 있다. 총 11개 코스가 있는데 제1코스가 순천만 갈대 길이다. 순천만의 해안선을 따라 와온해변과 화포마을을 잇는다. 총길이 16㎞,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길이다. 화포에서 출발, 와온에서 길을 마감하는 이들이 많다. 겨울에는 철새들의 안전과 휴식을 위해 대대포구와 장산 구간이 한시적으로 폐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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