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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김윤겸 '극락암(極樂菴)'…암자에서 굽어보는 산의 파도…시름 잊게 하는 극락이 이런 곳일까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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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극락암(極樂菴)', 종이에 엷은 채색, 27.3×42.9㎝,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산 정상에서 맞는 자연은 매번 신비롭다. 때로는 뜻밖의 풍경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대구의 비슬산이 그랬다. 굽이굽이 능선을 지나 정상이 보이자 심상찮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신령스러운 바위가 몸을 맞대고 모여 있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절벽 바위에 우뚝 선 3층 석탑이 속세를 굽어보고, 그 곁에 단아한 풍채의 절이 있다. 대견사(大見寺)다. 탑 앞에서 바라본 드넓은 산세는 무아지경이었다.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1711~1775)의 작품 '극락암(極樂菴)'이 바로 여기인가 싶었다. 높은 절벽에서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산을 내려다보며 극락의 세계를 감상한다.

예전의 산수화가 신비로운 산수에 도인이 등장하는 관념의 그림이었다면 조선 후기가 되면 산천을 직접 유람하고 현장에서 사실적으로 그린 산수화가 등장한다. 이때 한글문학과 진경산수화, 판소리가 만개한 문화의 절정기(진경시대)였다. 경제지수가 올라가자 여행이 활발해지고 예술가들도 명승지를 유람했다. 김윤겸의 '극락암'도 경남 함양을 유람하고 남긴 작품이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유행시킨 김윤겸은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의 서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창업은 노론의 권문세가인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넷째 아들이다. 집안 대대로 영의정을 지낸 가문에 부담을 느낀 김창업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시를 짓거나 거문고를 타면서 살았다. 학문과 문화를 이끈 명문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김윤겸도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1765년 무렵 경상도 진주에 있는 소촌역(召村驛) 찰방(察訪)을 지내며 부산과 경상도를 유람한 기행 산수화를 남겼다.

진경시대를 선도한 백악사단은 서울의 백악산과 인왕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인과 예술가, 북학파들의 문화집단이었다. 김윤겸의 백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 등이 17세기 후반 산수기행문학을 태동시킨다. 18세기에 이르면 관동과 금강산 등을 그린 기유도(記遊圖) 형식이 크게 유행하고, 그 중심에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과 김윤겸이 있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는 많은 시인묵객(墨客)이 찾아가서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다. 화가들은 명승지를 유람하고 그린 그림을 모아서 그림첩을 만드는 것이 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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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화가

당시 화가들은 중국에서 유입되는 새로운 문화사조와 그림책을 접하고 서양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김윤겸도 그랬다. 그는 부산과 가야산, 덕유산 일대를 유람하고 그린 실경산수화 14점을 묶어서 '영남기행화첩(嶺南紀行畵帖)'을 만들었다. 서양화적인 구도와 맑은 색채가 강한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이다. 면으로 명암을 나타내고 양감을 표현해 화면의 깊이를 더했다. 필법이 완숙한 경지에 이른 만년의 작품으로 그만의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극락암'은 '영남기행화첩'에 있는 작품이다. 고원(高遠)의 시점으로 절벽에 사찰을 배치했다. 바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광활한 산은 평원(平遠) 시점이다. 푸른색으로 가뿐하게 처리했지만 실경의 생동감이 넘친다. 실제 풍경을 옮기면서 사물의 밝음과 어두움을 표현한 것이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화가는 왼쪽 절벽에 위치한 사찰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긴다. 힘겹게 오른 산에서 일주문을 마주한다. 극락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사찰로 들어서면 발 아래 풍광이 속세를 잊게 한다. 나아가 자신을 비우는 순간 극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탁 트인 시야는 사찰이 '극락암'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드럽고 온화한 산세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화면 왼쪽에는 짙은 먹을 옆으로 찍어 계곡을 얻었다. 언덕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우뚝하다. 절벽의 바위는 푸른색으로 맑게 선염(渲染)해 강하게 표현했다. 절 입구에는 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일주문은 간결하기 그지없다. 사찰은 탈속의 경지로 들어가게 한다. 오른쪽 화면에는 어떤가. 굽이굽이 산이다. 산봉우리는 짙은 푸른색에서 아래로 갈수록 연하게 색을 바림했다. 푸른 색과 먹으로 그린 단순한 작품이지만 심금을 울린다. 오른쪽 맨 위에 '극락암'이라는 제목 아래 '진재'라는 호가 붉다.

4월의 비슬산은 분홍빛 바다다. 대견사 뒤로 천왕봉 가는 길에 펼쳐진 분홍빛 진달래가 장관이다. 비슬산은 여러 방향에서 올라갈 수 있다. 그만큼 깊고 크고 웅장하다. 산 정상의 바위가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아서 비슬산이라고 한다. 몇 번 비슬산에 올랐지만 대견대에서 바라본 진달래 꽃물결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한다. 지상에 펼쳐진 분홍빛 극락세계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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