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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엽의 한자마당] 한자 공부

2021-04-09

사물모양 본떠 만든 그림글자…200자 정도 알고나면 다른 글자도 쉽게 학습

한문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판세가 기운 듯하다. 한글 전용 세월이 길어질수록 한자 사용의 외침은 더 잦아들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적는다고 단번에 토박이말로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자를 쓰지 않는 것과 모르는 것은 별개 문제다. 한자를 몰라도 문맥 속에서 낱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예를 들면 '가운데 중(中)'이란 글자다. 중풍, 중독, 적중, 뇌졸중 등의 낱말에는 모두 가운데 중이 들어 있다.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해 보자. 이 낱말들을 모르는 대학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운데 중을 제대로 모르면 일상용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낱말의 뜻을 글자 그대로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답을 보자. 독자들이 추측하는 답과 맞춰보면 어떨까. 중풍(中風)은 '바람에 맞다', 중독(中毒)은 '독에 치이다', 적중(的中)은 '과녁을 맞추다', 뇌졸중(腦卒中)은 '뇌가 갑자기 당하다'로 풀 수 있다. 이들 낱말에 '가운데'란 뜻은 없다. 왜 그럴까?

본래 중 자는 전장에서 대장이 직접 통솔하는 '중군(中軍)'의 깃발을 본뜬 글자이므로 '가운데'란 뜻을 가진다. 그러나 '맞다·맞추다·당하다'라는 뜻도 있다. 중은 어떤 물건(口)을 위에서 아래로 뚫은 모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뚫을 곤' 자( )는 찌르거나 뚫는 모양이고, 口(입 구)는 찔리거나 뚫리는 대상이 된다. 따라서 중에는 '맞추다·맞다·당하다'란 뜻도 있으며, 이러한 의미로 만들어진 낱말이 중풍, 중독, 적중, 뇌졸중 등이다.

이처럼 한자 낱말은 그것을 이루는 한자를 알 때 비로소 본래의 뜻을 알 수 있다. 한자어의 많은 낱말이 글자를 따질 필요없는 토박이말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낱말은 그렇게 다룰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어를 반드시 한자로 표기할 필요도 없다. 표기하지 않더라도 한자를 알면 문맥 속에서 해당하는 한자를 특정할 수 있다. 필요할 때 그 한자를 상기할 수 있으면 된다. 이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잘 짜인 방법으로 가르치고 배우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교육용 기초한자 1천800자 정도만 알면 대체로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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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에게 한자는 특별한 존재다. 한자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말하지 않는 날도 없다. 뜻을 제대로 아느냐는 것은 차치하고 한국 사람은 누구나 한자어를 구사한다. 한자 공부가 우리에게 비교적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자를 안다는 것은, 글자의 꼴과 뜻과 소리를 아는 것인데, 우리는 날마다 한자의 뜻과 소리를 엮어 말을 한다. 목공, 목수, 식목이란 말을 할 때 '목'이란 소리와 '나무'란 뜻이 자연스레 따라다닌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형성된 이 한자 본능에 글자의 꼴을 덧씌우기만 하면 된다.

한자의 기초가 되는 글자들은 대개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그림글자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들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200자 정도의 그림글자를 익히면 나머지 글자들은 생각보다 쉽다. 잘 가르치고 쉽게 익히는 방법을 개발하고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역할을 국가와 공교육이 제대로 감당하면 될 일이다.

한자를 알면 한글로 적더라도 한자 낱말 본래의 뜻을 알 수 있지만 모르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수박 겉핥기 같은 말글살이를 할 수밖에는. 이제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한글 전용을 찬성하지만 한자 공부는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글 전용과 한자 공부는 우리 말글이란 수레를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다.
<한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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