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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8] 청진에서 라선시로 향하는 기찻길

2021-04-23

'바구니'라 불리는 객차 4~5개 제외 모두 화물칸…상급주민 타는 칸엔 침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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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로 가득 찬 청진 시내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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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시 옷 공장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
경성에 있었을 때 원래의 스케줄은 어느 한 북한 주민의 집에서 홈스테이하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갑작스럽게 취소가 되는 바람에 대신 편안한 마사지와 온천을 경험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경성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라진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청진에 있는 한 기차역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청진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알록달록한 아파트와 함께 라선처럼 자전거가 많이 다녔고 신호등 없는 도로에서 길 안내원이 깃발을 든 채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차량이 많진 않아서 업무가 아주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기차역 인근 주민 주로 무역업 종사
중국서 산 물건 북한에 팔면서 이익
평균 60㎞로 달리는 청진-라진행 기차
전기 자주 끊겨 휴대용 스탠드 구비

라선시 도착해선 공장 여러곳 방문
의아할 정도로 자유로운 촬영 가능
산업력 자랑스레 여기는 느낌 받아


열차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 승객의 모습
열차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 승객의 모습.
청진 시내에도 소달구지가 다녔다. 길 한복판에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아이들과 함께 소달구지가 지나가는 재미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제2의 평양으로 불릴 만큼 매우 '정치적인' 도시로서 알려진 청진이지만 어린 두 여학생은 나를 바라보고 활짝 웃어주기도 했다. 차량은 많지 않았는데 차가 보인다 싶으면 외제 차일 정도로 외제 차가 은근히 많았고 특히 아우디 A6와 벤츠 S클래스 등 중대형 외제 차가 꽤 보이기도 하였다.

청진의 안내원은 남한에 대해 많이 궁금해했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길에는 차가 얼마나 많은지, 어떤 차들을 주로 타는지 등을 물어봤다. 그는 일본부터 유럽까지 자동차 브랜드를 죽 읊었다. 그런데 현대차는 알고 있었지만 기아차는 처음 들어보는 듯했다. 그는 "북한에선 자가용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면 건강에도 좋지 않으냐"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북한에 있는 동안 자전거 경주대회를 TV로 흥미롭게 보는 주민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기차역에 있는 북한 주민들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산 물건을 북한에 팔면서 이익을 얻는다고 했다. '평라선'으로 불리는 평양에서 두만강까지 가는 열차가 800㎞ 정도 되는 만큼 북한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내가 탔던 구간은 100㎞ 정도의 구간인 청진-라진행 기차다. 북한에서는 객차를 '바구니'라고 불렀다. 이러한 '바구니'가 열차 중간에 4~5개가 있었는데 모두 화물칸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앞쪽의 2~3개 정도의 칸이 일반인을 위한 '바구니'였고 상급 주민들이 타는 칸이 뒤편에 2개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일행은 상급 주민들이 타는 칸에 탔는데 당시에 몇 명의 북한 주민 정도만 보였다. 열차 내부엔 침대도 배치돼 있었으나 승객은 전반적으로 눈에 띌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우리 일행은 열차 내부 깊숙한 공간에 배치되어서 열차 안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나의 DSLR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눈치 봐 가면서 촬영하기는 했지만, 나의 몰래카메라가 말썽을 부려서 기차 내부의 모습을 촬영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열차는 시끄러웠고, 덜컹댔고, 속도가 일정하지 않았는데 평균 시속은 60㎞ 정도로 느껴졌다.

기차 밖으로 보인 모습을 비교해보니 달리는 차량보다도 느린 경우도 있었다. 창밖으로 다른 열차들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열차마다 사이즈도 상태도 달랐다. 사이즈가 큰 것은 그만큼 속도가 빨라 보였다. 기차가 운행 중 갑작스럽게 전기가 안 들어오기도 했다. 북한에서 전기가 갑자기 들어오지 않던 상황을 몇 번 경험했는데 북한 주민들은 이것이 익숙한 듯 식당 같은 곳에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휴대용 스탠드가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남한과 북한의 위성사진을 보면 북한 땅은 어두컴컴하고 한국 땅은 불빛으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극심한 전력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북한에서 전기가 나가는 것을 목격한 만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북한에 있으면서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북한은 사회주의인 만큼 옥외광고가 없다. 그래서 밤에는 어두컴컴할 수밖에 없고 전기가 그만큼 필요하지도 않다. 북한에 있는 동안 불빛이라고는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는 몇 개의 슬로건과 미용실 불빛 외에는 보지 못하였다. 해가 저물고 난 후에는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우면서도 라선시에 들어서면 다시 한번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세관 절차를 겪어야 하는 것인가 걱정하였다. 열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보다는 더 편하긴 했는데 라진까지 군데군데 멈춰서는 바람에 결국 100㎞를 가는 데 거의 8시간이 걸렸다.

북한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라선에서 보냈는데 신발과 옷 공장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공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공장 관계자들은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하였다. 함경북도에 있는 동안 느낀 점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인데 공장 직원들의 유니폼 또한 밝은 보라색, 파란색 또는 주황색이었다. 공장 내부에는 주체사상과 '김정은 동지를 높이 받들어 모시자'와 같은 슬로건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입고 다니는 인민복을 '장군복' 혹은 '수령복'이라고 하는데 이 옷을 만드는 공장에는 김일성과 '7·27'에 대한 문구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1953년 7월27일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인데 북한은 '미 제국주의의 항복을 받아낸 날'이라며 이날을 '전승절'이라고 부른다. 어느 직원 옆에 벽에는 손으로 직접 써서 붙인 '7·27' 노래 가사가 있기도 했다.

조현준 계명대 교수
조현준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공장에서의 촬영은 자유로워서 나의 DSLR로 마음껏 찍었다. 아마도 북한에 있는 동안 이렇게 마음 편하게 촬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북한이 촬영에 대한 제한을 전혀 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똘똘 뭉친다면 살아가는데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공장은 이러한 '자력갱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서방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 또한 관찰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며칠 동안 라선에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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