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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대구경북 더 짙어지는 고령화의 그늘 .4] 교통 환경이 서러운 고령층

2021-06-16

병원·시장 주변 노인사고 많은데, 엉뚱한 곳에 보호구역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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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4시40분쯤 대구 남구에 위치한 노인보호구역. 한 어르신이 수레를 끌고 가고 있고, 뒤로 두 대의 차가 서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대구의 노인들이 교통사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다. 노인에게 덜 친화적인 교통환경도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노인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대구시의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의 68.6%(35명)가 고령 보행자였다. 대구시는 "이런 흐름이 수년간 지속해왔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년) 대구 보행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총 310명인데, 이 중 65세 이상 고령자는 177명(57.1%)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구의 노인 교통사고 문제는 다른 광역시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9년 대구의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는 2천349건이었는데, 대구보다 인구가 많은 인천의 경우 1천145건에 머물렀다. 대구보다 인구가 많은 부산이 2천362건으로 대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광주는 1천187건, 대전은 1천259건, 울산 613건 발생했다.

지난해 대구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중 68.6%가 고령자
어린이보호구역 767개소인데 노인보호구역 58개소 불과하고
그나마 있는 노인보호구역엔 제한속도 무시 과속차량 다수
횡단보도 없거나 주정차 단속카메라 없는 구역도 많아 문제

市, 무단횡단 위험성 등 인지하도록 노인대상 교통교육 준비
"시설물 개선에 예산 투입…교통문화 개선위해 시민협조 필수"

◆대구지역 보행 노인사고 다발지역 30곳에 달해

지난달 4일 대구 동구 동대구로에서 길을 건너던 80대 여성 A씨가 달려오던 SUV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A씨가 동구 신천동의 건강검진 기관에서 검진 후 용계동 소재 자택으로 가기 위해 버스 타러 길을 건너던 중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령의 노인이 이미 건강검진 기관에서 영남타워 앞까지 370m가량을 걸어온 상황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에 닿기 위해선 최소 320m('상공회의소 건너' 정류장), 최대 580m('영남일보 건너' 정류장)를 걸어야 했다.

그러나 동대구로를 직선으로 가로지르면 절반도 걷지 않아도 된다. A씨가 무단횡단을 선택한 이유로 추정된다. A씨 사고를 계기로 사고 발생 구간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대구시와 대구경찰청 등 관계기관은 사고 발생지점에 횡단보도를 놓기로 했다.

노인들에게 취약한 또다른 교통 구간도 적지 않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대구시의 '보행노인사고 다발 지역'(반경 200m 안, 65세 이상 노인보행자가 다친 사고가 3건 이상, 사망사고 포함 시 2건 이상 발생한 구간)은 총 30곳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남구 7곳, 달서구 6곳, 중구·동구·북구 4곳, 수성구·서구 2곳, 달성군 1곳이다.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는 중구 중앙네거리 부근를 '노인 보행자 사고 다발지'로 분류했다. 또 신호기의 위치가 부적절하고 보행 신호 시간이 부족하므로, 신호기를 이설하고 보행 시간을 연장할 것을 요구했다.

유수재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처장은 "고령자 사고 다발 지역의 특징은 시장, 동네 병·의원 등 실제로 노인 통행이 많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보호구역은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시설 등 인근에 대개 설치돼 있어 수요와 공급이 다소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구 북구 칠성동1가 칠성시장 네거리 부근에서 무려 9건의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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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르신이 대구 수성구 지산동 동대구농협 수동지점 앞에서 유모차에 의지한 채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 이름만 노인보호구역도 많아

'노인보호구역'이 정작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다.

지난 14일 오후 4시 40분쯤 대구 남구의 한 노인보호구역. 인도에는 제한 속도 30㎞/h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고,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의 도로에는 '노인보호구역'이라 쓰인 붉은 색 미끄럼 방지 구간이 설치돼 있었다.

이 곳에 한 노인이 종이 박스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몇 분간 도로가에 수레를 세워두고 한숨을 돌렸는데, 그 사이 일부 차량이 수레를 피해 빠른 속도로 지나가기도 했다. 노인이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할 때 차도에는 차량 2대가 줄지어 섰다. 밀려오는 차를 피해 수레를 끌기 힘에 부쳤던 노인은 주변 시민의 도움을 받아 수레를 다른 곳으로 힘겹게 옮겼다.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 2018년 노인보호구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당시 총 51곳의 노인보호구역 중 '과속을 알리는 경보시스템이 설치되지 않은 장소'는 무려 41곳(80%)에 달했다. 또 '보행 안전을 위한 방호 울타리가 없는 장소' 27곳(53%), '횡단보도 표식이 없거나 인도 적치물로 인해 통행에 불편을 야기하는 장소' 20곳(40%),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없는 장소' 40곳(78%) 등으로 확인됐다.

가뜩이나 어린이보호구역에 비해 노인보호구역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대구 소재 어린이보호구역은 767개소, 노인보호구역은 58개소다. 대구시의 노년 인구가 지난해 6월 기준 39만2천101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못내 아쉬운 상황이다.

지난해 국회 박완주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보행자 교통사고 건수는 어린이 대비 노인이 3.2배에 이르렀고, 사망자는 37배가 넘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어린이는 학교나 학원 등 예상 동선이 있지만, 노인의 경우 어느 시간대에 어디로 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기가 힘들어 노인보호구역을 지정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며 "법은 규제의 확장을 경계하고 있어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민들도 노인보호구역을 지정해두면 어린이보호구역과 달리 반발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고 했다. 다만, "정부에서 내려오는 국비가 어린이 보호구역 중심적이긴 했지만, 지난해부터 노인보호구역 예산 역시 동일하게 내려오는 만큼, 시설물 보강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 노인 의식 개선도 필요

노인들이 교통에서 안전한 대구로 거듭나기 위해선 '노인들의 의식개선'도 제도 및 시설 개선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구시의 지난해 무단횡단 사망자 16명 중 65세 이상인 사람이 13명에 달했다.

조모(28·대구 동구)씨는 "저녁 운전을 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도로에 나타날 때가 있어 가슴이 내려앉을 때가 많다"고 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고령자 보행 특징에는 △녹색 신호 점멸 시 대기하기보다 그냥 건너는 경우가 많다는 점 △미리 횡단보도 연석에 내려와 있거나 길을 건너기 전 좌우를 살피지 않는다는 점 △한번 건너기 시작한 도로는 앞만 보고 건너는 보행 습관이 있다는 점 등이 있다. 특히 노인들은 보행 중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걸음걸이가 원활하지 않아 교통사고 발생 확률을 높이고 있지만,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사실 노인 교통사고는 무단횡단 등 노인 자신의 과실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설물은 예산을 통해 개선 가능하지만, '교통문화'는 예산만으로 개선이 힘들다. 시민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대구시 차원에서 노인 교육, 노인협회와의 MOU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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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부 서민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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