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10627010003427

영남일보TV

[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 go! go!'] 꿩과 고대 식문화

2021-07-02

5세기 초 사후음식으로 부장된 꿩…살 많은 부위만 골라 넣어

2021062701000855300034271
2021062701000855300034272
박물관 학예연구원

'꿩 대신 닭'이란 말을 흔히 쓴다. 우리 전통음식인 떡국은 보통 소고기를 육수로 만드는데 농가에서는 소가 아주 귀한 동물이었기에 꿩고기를 이용해 육수를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냥으로 꿩을 구하기가 힘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기르던 닭으로 육수를 내었는데 이것을 보고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도 꿩은 산이나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 중에 하나다. 보통의 새들이 그렇듯이 꿩도 수컷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반면 암컷은 깃털 빛깔이 짙고 짧은 꼬리를 지녀 수컷보다 볼품이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수컷을 '장끼', 암컷을 '까투리'라 하며 꿩의 새끼는 '꺼병이'라고 한다. 아마 새끼 꿩의 하는 짓이 약간 모자란 듯 꺼벙했던 데서 유래된 모양이다.

기운 돋워주고 맛도 뛰어나
신라시대 다양한 방법 조리
높은 사람에 예물로도 바쳐


꿩은 조선시대 민화 중 화조도(花鳥圖)에 자주 등장한다. 화조도는 연꽃이나 매화, 모란, 국화 등 여러 가지 꽃과 오리, 백로, 원앙 등 각종 새들을 쌍으로 그리는데 이 새들 중에 꿩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꿩은 선비가 높은 사람을 찾아뵐 때 예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꿩은 맛이 좋지만 가둬놓고 길들일 수가 없었기에, 선비가 임금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수중에 두고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임금을 잘 보필하되 굳은 지조를 지켜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선비의 정신을 꿩에 담아 폐백으로 바친다는 뜻이란다.

꿩은 예로부터 보양식품으로 기운을 돋워주고 고단백의 알칼리 식품인 데다가 맛이 아주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문헌인 '삼국유사'에서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평소에 하루 동안 쌀 세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신라시대 왕의 식사에도 꿩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되었던 것이다. 또한 신라 눌지왕 25년(441) 봄 2월에 '사물현(현재의 경남 사천시)에서 꼬리가 긴 흰 꿩을 바쳤고', 백제에서는 법왕 1년(599) 9월 '왜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낙타, 노새, 양, 흰 꿩을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고구려 마선구1호분 벽화고분에는 고깃간에 꿩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꿩은 삼국시대에도 주요 단백질 식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고고학 발굴조사 성과를 통해서도 꿩이 우리 지역 고대사회에서 많이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988년 영남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경북 경산 조영동고분군 EⅢ-2호분이 있다. 이 무덤은 5세기 초반 즉 400~420년경 축조되었던 것으로 주인공이 묻힌 주검칸과 사후 생활물품과 음식을 부장한 부장칸으로 축조되었다(그림1).

발굴 당시 주검칸은 도굴되어 거의 남은 것이 없었지만 이 무덤 주인공이 당시 최고 지배자임을 상징하는 금동관과 금동허리띠, 유리목걸이, 은반지 등 다양한 장신구가 확인되었으며 철제 큰 칼이나 손칼, 쇠창 등 무기류도 확인되었다. 부장칸에는 전혀 도굴되지 않은 채 내부에 각종 토기류와 농공구류, 마구류, 갑옷과 무기 등 1천500년 전에 부장되었던 유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부장칸에 부장된 다양한 크기의 목항아리에는 바다에서 잡은 상어나 방어, 복어, 넙치 등이 담겨져 있었으며 민물고기인 잉어도 부장되었다. 또한 눈알고둥, 피뿔고둥, 두드럭고둥, 맵사리, 밤고둥, 전복, 백합, 큰집가리비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개류도 출토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곳에 묻힌 당시의 최고 지배자가 동해안 또는 남해안 지역과 활발히 교역하며 해안지역에서 생산된 어패류를 즐겨 먹었음을 짐작게 한다.

경산 조영동고분군 부장칸에
다수 음식 중 꿩 科 657점 발견
얼마나 즐겨 먹었는지 알 수 있어


이 부장칸에는 다수의 조류도 확인되었다. 이 중 136번 짧은 목항아리에는 기러기 속(屬), 두루미 과(科), 느시 과(科) 등 3개체의 조류가 담겨져 있었으며 41번 짧은 목항아리에는 꿩 과(科) 657점이 부장되어 있었다. 조류의 경우 흉골은 한 개체에 하나씩만 있는 것이므로 이 흉골을 기준으로 볼 때 최소 개체 수는 70마리로 추산할 수 있었다. 즉 이 항아리에는 꿩 70마리를 잡아 부장하였던 것이다. 5세기 초반에 죽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꿩을 얼마나 즐겨 먹었는지, 또 당시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꿩을 얼마나 잡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 할 수 있겠다(그림2, 3).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 항아리에 담긴 70마리 꿩의 날개 윗부분인 상완골과 몸통과 날개를 잇는 부위인 창사골, 오구골, 견갑골, 몸통의 아랫부분인 흉골, 발을 제외한 다리 부위인 대퇴골과 경족근골, 비골만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즉 꿩을 잡아 손질하면서 먹지 않은 내장이나 발끝과 날개끝, 목과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살이 많은 특정 부위만 선별하여 부장했음을 알 수 있다(그림4).

그런가 하면 이 무덤보다 한 세대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이 무덤에 연접되어 축조되는 조영EⅢ-4호분의 부장칸에서 출토된 어류의 사례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 무덤의 부장칸에서 확인된 짧은 목항아리에는 길이가 50㎝ 이상 되는 넙치 한 마리를 날카로운 도구로 삼등분하였는데 척추골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넙치의 경우 내장만 손질하고 다른 부분은 손질하지 않은 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분묘에서의 동물 희생의례는 동물 희생과 동물 부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분묘 축조 과정에서 무덤의 외부 즉 무덤의 뚜껑돌 위나 봉토 내부, 봉토 주변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는 후자의 경우인데, 동물의 부장은 대부분 주인공의 사후 세계를 위한 음식 공헌이었다. 또한 음식 공헌에 있어서도 먹지 않는 부분은 손질하여 제거한 상태로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1500년전 고분 속에서 출토된 동물뼈도 고대인의 식문화를 한걸음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료(史料)가 될 수 있다.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 인기기사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