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10707010000746

영남일보TV

[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음소거 추격 스릴러' 미드나이트…들을 수 없는 목격자와 연쇄살인마의 '숨막히는 추격전'

2021-07-09

미드나이트(권오승.연출)_스틸컷(진기주)
미드나이트 진기주 스틸 컷.

권오승 감독의 '미드나이트'가 지난달 30일 영화관과 OTT(Over-The-Top)에 동시 공개됐다. 코로나 시대에 많은 영화가 관객 동원을 장담할 수 없는 영화관 대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향하는 모습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영화관 개봉과 OTT 공개를 동시에 하는 건 지난 4월15일 이용주 감독의 '서복'에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지난해 기대작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코로나19로 개봉을 계속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서복'과는 달리 '미드나이트'는 '서복'의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동시 공개 결정을 내렸다. '서복'과 '미드나이트'가 공개된 OTT 플랫폼은 티빙으로 지난해 10월 CJ ENM에서 분할돼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최근 JTBC가 티빙에 합류한 데 이어 네이버와의 협력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앞서 CJ ENM은 2025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무려 5조원을 투자해 티빙을 국내 1위 OTT 업체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어,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청각장애 '경미'
선한 얼굴로 상대방의 긴장 풀게한 후 차가운 얼굴로 변하는 '도식'
배우 진기주·위하준, 구르고 달리고 끊임 없이 쫓고 쫓기는 액션 열연

"누구나 쉽게 목소리 내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아
약자 생각하는 영화 만들고 싶어…청각장애인 표현방식 많이 고민"


'음소거 추격 스릴러'를 표방한 '미드나이트'는 소리를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목격자 '경미'와 오직 살인만이 목적인 두 얼굴의 연쇄살인마 '도식'의 한밤 추격전을 그렸다. 이 영화가 이전에 나왔던 추격 스릴러 영화들과 차별점은 청각장애를 가진 '경미'가 자신의 장애로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는 예기치 못한 위험과 그것을 극복하는 통쾌함이다. '도식'이 표적을 바꿔 자신을 쫓아오는데도 '경미'는 그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발소리도 들을 수 없고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은 기가 막힌다. 이를테면 '도식'의 추격을 피해 자신의 차 안에 숨었다고 '경미'가 안심하는 찰나 뒷좌석에 미리 타고 있던 '도식'이 소리내어 웃는 것을 '경미'는 알지 못하는 장면 같은.

미드나이트(권오승.연출)_스틸컷(위하준)
미드나이트 위하준 스틸 컷.

'미드나이트'의 쫓고 쫓기는 장면들이 관객을 더욱 집중시키는 설정은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가봤음직한 일상적인 공간들이 추격전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도심의 주택가나 주차장, 마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번화가까지. 거기에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집 안에 연쇄살인마가 들이닥치는 장면은 쫓기는 주인공과 관객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경미'로 분한 배우 진기주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김태리 분)의 절친으로 한국영화 관객과 처음 만난 그는 청각장애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 청인과 농인을 만나 수어 연습을 거듭했고 농인이 소리를 내는 방식을 오랫동안 연구하기도 했다고. 영화 후반부에 '경미'가 수어 대신 소리를 내며 자신의 처지를 '도식'에게 설명하는 장면은 그녀의 노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추격전이 이어지며 끊임없이 달리고 구르고 매달리는 과격한 액션 장면에서도 말 그대로 열연을 펼쳐 감탄을 자아낸다(제작보고회에서 나온 "배우들의 연골을 갈아 만든 영화"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2021070701000208300007464
권오승 감독

'도식'으로 분한 배우 위하준 역시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으로 관객의 눈도장을 제대로 받은 이로 선한 얼굴로 상대방의 긴장을 풀게 한 후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하는 두 얼굴의 연쇄살인마를 맡았다. 실제 1인 2역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한 것과 마찬가지인 그는 진기주처럼 '도식'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다룬 프로파일링 책과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단다. 연기하는 내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많이 예민해지기도 했다고.

'미드나이트'로 장편영화 연출 데뷔를 한 권오승 감독은 2009년 성균관대 영상학과를 졸업하고 2019년 9월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꼭 10년이 걸린 셈이다. "누군가의 두 시간을 재밌게 뺏는 매력"에 반해 군 제대 후 대학을 편입하고 연출부 생활도 하고 단편영화 '36.5℃'를 연출하기도 했다는 그는 연출을 할 때 주인공인 청각장애인의 삶을 담지 않고 도구적으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견지했단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수많은 청각장애인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외형적으로는 비장애인과 구분이 안되는데 청각장애가 있다는 걸 상대가 아는 순간 그 상대는 나름 배려를 하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하는데 그러면 갑자기 주위에서 다 쳐다본다고, 그런 순간들이 오면 당황스러워서 오히려 이야기를 잘 못하게 된다고. 그런 순간들을 영화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단다.

미드나이트(권오승.연출)_포스터
미드나이트 포스터

권 감독은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구나 쉽게 목소리를 내지만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진심으로 약자를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표현하는 방식에 많이 고민했다. 우연히 카페에서 청각장애인 두 분을 목격하게 됐다. 청각장애인이라 음료 호명에도 모르더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어떤 이들은 영화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겁을 잔뜩 먹은 채 2시간 가까이 밤거리를 내달려야 하는 경미 모녀를 지켜보는 일이 불편하다고 했지만 소수자에 관한 시선을 스릴러라는 장르에 오롯이 담고자 노력한 신인 감독의 노력에 나는 더 마음이 간다. 연쇄살인마로부터 벗어나고자 영화 내내 부단히 애쓰던 여성 캐릭터를 끝끝내 주검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잘린 그이의 머리를 기어이 어항에까지 밀어 넣었던 '추격자'에서 우리는 이만큼 성장한 것이니까.

2021070701000208300007461
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아, 그리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몸값 높은 스타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은 덕에 진기주와 위하준 같은 청년 배우들이 관객 앞에서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게 한 것도 칭찬해주고 싶다. 이 정도의 결과물이 이어진다면 티빙의 다음 프로젝트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주겠다(실제로 하반기 예정된 작품 가운데 배우 김고은이 주연한 '유미의 세포들'과 송지효가 주연한 '마녀식당으로 오세요'가 포진돼 있다고).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