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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파독광부 생애사

2021-07-21

광부 10명 생애 다룬 책 출간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 이면
독일 사회 불안정한 삶 소개
차별에 맞서 저항하기보다
약점 보완해가는 전략 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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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파독 광부'들이 조국의 경제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사실은 신화같이 떠돌고 있다. 한국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도 쓰여지고, 영화도 제작되고 박물관에서 전시회도 개최됐다. 하지만 막상 광부들이 독일에 정착한 후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튀빙겐 한국학 시리즈에서 출간된 파독광부 10명의 생애사를 다룬 '글릭 아우프!(Glueck Auf!)' 책이 출간돼 그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광부로 온 사람들이 한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돌파구로 서독행을 선택했다는 사실 및 사전에 광산에서 일한 경력이 없던 데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이었던 대부분 한인에게 독일에서의 막장노동이 신체적으로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파독 광부들이 막장을 떠나 독일 사회에 어떻게 정착하고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지 등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담은 부분이다.

파독 광부 중 상당수는 계약기간이 만료돼 체류허가를 연장해야 할 때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온 간호사 혹은 간호보조원과 결혼하는 길을 선택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는 했지만 반드시 독일에 영구 정착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대부분은 조금 더 돈을 모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 다시 적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독일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독일에 눌러 살기는 하지만 정년을 맞이하고 노년에 접어든 현재까지 이들에게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귀국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제약 사이에 아직도 긴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독일 사회에 정착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산다는 것은 3년 동안 막장에서의 육체노동보다 훨씬 어려웠다. 독일에서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독일에서 새로운 직업을 배우거나 공장에 들어가 비숙련 노동자로 일을 해야 했다.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많은 분이 이직을 거듭한 후 정년이 되기도 전에 실업자가 되거나, 불안정한 직장에 대한 대안으로 일찍이 자영업을 선택한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식당이나 식품점 등 자영업은 더 큰 도전이었고, 불안정한 삶을 의미했다. 특히 사업이 망했을 경우 이혼이나 가정 파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한인 사회에서는 미국 이민자들의 경우와 같이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이주자는 매우 드물었다.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처음부터 인종차별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이는 구조적이면서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였다. 하지만 차별에 대응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이들은 우선 차별을 근본적으로 독일인이나 독일 사회의 문제로 보지 않았고, 언어적·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소통의 어려움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차별의 근본적 원인이 본인이 힘이 없고, 제대로 된 직업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독일말을 잘 못하는 데 있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이런 차별에 맞서 직접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본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면 돌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외국인이라서 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하면 무리해서라도 자기 아파트를 구입한다든지, 직장을 못 찾을 때는 자영업을 모색한다든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는 자녀들의 출세로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본인의 차별 경험과 자녀들의 교육 집착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이러한 정면 돌파와 자녀의 출세를 통한 주류 사회의 인정 획득은 이방인들이 독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다.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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