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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 시티·따뜻한 공동체' .2] 당신은 '스마트 시민' 인가요?

2021-07-23

"기술혁신으로 세상은 살만해졌는가" 자문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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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유로 스마트시티 구축하고 있는 도시를 방문하거나 화상으로 회의를 할 기회가 많다. 런던(영국)에서부터 캄팔라(우간다)까지 스마트시티를 지향하는 모든 도시는 유사한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인다. 그런데 스마트시티의 전면에 무엇을 소개하느냐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과학의 발전, 인류의 삶 변화시켰지만 탄소배출 증가도 초래
스마트한 기술·인프라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 주목할 때

핀란드 헬싱키·英 런던 등 시민을 중심으로 스마트 시티 구축
행정에 기대기보단 도시공동체 주체로 협동 '스마트시민' 정의
"나 하나쯤 안해도 아무 문제없을거야" 생각이 도시문제 가속


◆모든 도시는 자기스타일의 스마트시티를 추구한다.

중국 항저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같이 기술과 인프라를 중심에 둔 스마트시티는 가장 먼저 통합관제센터를 보여준다. 도시의 스마트시티 관리자는 도시교통이 어떻게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리되는지, CCTV영상데이터가 얼마나 빨리 처리하는지를 분할된 대규모 스크린 앞에서 열변한다.

한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핀란드 헬싱키, 스페인 바르셀로나, 영국 런던 같은 스마트시티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도시목표와 이러한 목표를 함께 해결해가는 시민의 커뮤니티 활동을 제시한다. 이때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도시 목표는 기후나 인구문제 같은 전지구적 어젠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스마트시티의 핵심은 시민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스마트시티의 가장 단순한 정의는 '스마트한 시민이 사는 도시'다. 시민을 주체로 보는 것은 하향식 행정서비스에 익숙한 우리에겐 매우 낯선 일이다. 최근 들어 숙의민주주의 일환으로 온라인으로 청원을 하거나 주민참여예산제·시민원탁회의 등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가지만, 여전히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co-working) 것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시민들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요구보다는 '왜 행정은 해결 안 해주냐?'는 민원요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 보니 행정은 행정대로 과잉된 친절을 강요받으며 피로도가 높고, 시민과 행정이 대척점에서 경쟁과 감시의 대상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이렇게 해서는 시민이 도시공동체의 기여자이자 문제해결의 주체인 '전환의 시대'를 건널 수 없다. 행정은 시민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하고, 시민들도 시대가 요구하는 '스마트시민'으로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한다.

◆스마트시민이 만드는 스마트시티

'스마트'란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보면 '재치 있는 지능,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빠르고 활발한, 똑똑한, 센스가 있는, 영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스마트 시민은 한마디로 "문제 해결 역량을 가진 재치 있고 지혜로우며 독립적인 행동가"를 말한다.

그렇다면 스마트시민은 도시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그들은 도시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도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행정과 경제활동을 주고받는 복합 생태계이기에 다양한 도시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문제에 대한 공동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주기적으로 출몰하면서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문제를 발견하는 스마트시민은 질문을 바꾸는 힘이 있다.

가령 청년의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 추진하는 다양한 도시정책 앞에서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과연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고, 4차산업혁명·코로나19·기후변화의 삼중 파고 앞에서 갈 길을 헤매는 방역정책에 대하여 '지구상에서 감염병의 완전퇴치가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이 바뀌면 문제 정의도 달라지고 해결책도 다르게 처방된다.

대부분의 도시문제는 풍선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삐져나온다.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홀몸 어르신들을 위하여 상수도 원격검침기를 만들면 검침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CCTV교통영상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공지능기반 연동신호체계를 만들면 교통흐름은 원활해질 수 있지만 자가 운전차량이 많아지면서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도시의 새로운 위험요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문제는 숙련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합의와 반복적인 실험으로 최적안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스마트시민은 바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잘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기술과 인프라 중심 정책의 악순환 루프

여전히 스마티시티가 '새로운 기술이 마음껏 구현되는 공간'이라는 의미는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 기술과 인프라는 중요하다. 스마트 기술은 스마트산업단지 스마트농업단지 등으로 산업의 가치사슬망을 바꾸기도 하고 디지털트윈이나 메타버스 등으로 도시경제 환경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스마트한 기술과 인프라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명과 자본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경쟁해 왔으며, 기술혁신은 이러한 확장을 돕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보라, 세계는 살만해졌는가?

과학과 기술은 인류 진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역으로 과학과 기술의 반성 지점도 거기에 있다. 정복과 경쟁 중심의 기술개발이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 교육을 위한 학교시스템이 오히려 인격적인 교육을 방해하고, 시민을 위해 만든 도시가 오히려 시민 삶을 더 경쟁적이고 소외를 만드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자동차를 만들어 인간에게 이동 편의성을 제공했지만, 탄소배출 증가도 함께 가져왔다. 탄소배출은 시간함수를 통과하면서 처음에 좋았던 편의성은 다시 기후위기를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바뀌었고 '나 하나쯤 안해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라는 공유지의 비극이 가속된다.

이미 둠스클록(Dooms Clock)의 초침이 재깍재깍 그 최후의 몇 초를 남기고 있다. 세계는 요동치고 있다. 지구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으며 대규모 자연 재해를 동반한 기후 위기가 계속된다. 탄소배출량은 증가하고, 코로나 같은 감염병 출몰시기가 빈번해졌다. 다시 탄소배출을 줄이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었지만, 대량의 전기를 만드는데 또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체계를 갖출 수 있다는 신화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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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은 문제를 만들고, 다시 문제를 해결한다. 덕분에 생명을 연장하고 편의성을 얻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마치 피자 한 판의 가운데에서 바깥으로 갉아먹는, 바깥 부분 도우만 남은 상태같다. 과연 이러한 위기의 자기 강화 사이클을 멈출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대전환은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자기완결적인 책임과 도시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스마트시민의 품격을 요구한다.

<대구테크노파크 디지털융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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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디지털융합센터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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