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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근로자 건강 위협하는 산업보건환경

2021-09-07

산재사망 6할은 6개월미만의 노동자
안전보다 이윤 앞세운 사업주 많은 탓
사업주들 시대에 맞는 소명의식 가져야

탁기홍(산업보건)
탁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대구센터 원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2003년 열악한 산업보건 환경을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를 선택했고 대구지역 3산단, 염색산단 등 여러 산단의 근로자를 검진하러 다녔다.

어둡고 좁은 공장 내부와 다닥다닥 붙은 기계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를 기름때와 불완전한 환기로 인한 오묘한 냄새, 환기가 안 되는 작업장에서의 노말헥산 중독으로 인한 베트남 여성노동자들의 하지마비 사건도 그즈음 터진 사건이었다.

지금 와서 최근 조성된 산업단지의 훌륭한 공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그곳의 공장들이 너무나 열악했었음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물론 요즘에도 에탄올 대신 사용한 메탄올 중독으로 20대 건장한 노동자들이 단체로 실명이 된 사건이 있었으니 후진국형 사고가 없어진 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낯선 분야에서의 기대감과 의욕이 가득한 때에 그걸 한 번에 날려버린 일화가 있다.

일상적으로 아침에 검진버스를 타고 한 허름한 공장을 방문했다. 여느 때처럼 건강 상담 중이었는데 공장마당에서 일대 소란이 있어 나가 보니 사장이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이유는 검진 때문에 기계라인을 멈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검진시간도 오래 걸려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는데 검사하느라 대기 줄에 서서 '놀고(?)' 있는 직원들을 보니 얼마나 비위에 거슬렸을 것인가. 게다가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실시하는 특수검진은 강제적인 것이고 비용도 회사가 부담하는 것이기에 화가 날 대로 난 사장은 우리를 '도둑놈' '깡패놈'이라 부르며 마치 '삥 뜯으러' 온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뭉개질 대로 뭉개진 기억이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사장의 마인드가 그 시절의 중소기업의 노동환경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이윤을 내기 위한 기업에서 근로자 안전과 건강을 위한 제반의 활동은 투자가 아니라 비용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요식 행위로 그쳤을 것이다.

한 나라에서 대통령의 권한보다 한 기업에서 사업주의 권한이 더 막강하다. 대통령은 국민 심기도 알아야 하고 여당과 야당 눈치도 봐야 하지만 사업주는 적어도 그런 것은 없다.

사업주는 결정권자이기에 능력(권한)이 대단하다.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듯 해낸다. 아마도 사업주는 회사 내에서는 법을 지키는 선에서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식행위로 그쳤던 사업주에게 안전과 보건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문제점이 있다면 미봉책으로 끝내지 말고 온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윗사람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걸 능력과 미덕으로 아는 우리나라 분위기상 비용이 드는 국소배기구, 환기장치 개선, 비싼 대체재로의 전환, 낡고 위험한 기계의 교체는 보건·안전 관리자가 주장하기 어려운 보완 대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업주 중에 회사에서 어떤 유해물질을 쓰고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노동자들이 어떻게 노출되고 있는지 면밀히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산재사고 사망자의 6할은 6개월미만 노동자이고 산재사망의 4할은 하도급 노동자라는 사실은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면서도 미숙련이 반복되는 비정규직 하도급 노동자에게 산재사고는 숙명처럼 발생함을 말한다.

이윤에 최적화된 현재의 산업체계에서 노동자에게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벤져스' 중 최고의 능력자는 사업주다. 시대가 바라는 사용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바라본다.
탁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대구센터 원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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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기홍 대한산업보건협회 대구센터 원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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