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10916010002159

영남일보TV

[신간] 관리자들…조직 내 부조리 속 '관리'의 힘에 기생하는 인간들

2021-09-17

어느 공사 현장서 벌어진 비극
산 자-죽은 자 누구에게 착할까
선택 갈림길 위 나약함의 민낯

2021091601000531500021592
관리자들_표1
이혁진 지음/민음사 196쪽/1만4천원

조직에 속해 일을 하다 보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한다. 이 상황이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수긍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관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일부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소설 '관리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어느 작은 공사장을 배경으로 그려낸다. 국도 옆 하수관 공사 현장에는 정신없이 일하는 인부들 사이에 좀처럼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있는 선길이 있다. 공사 현장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에게 현장 최고 관리자는 현장 일이 아닌 멧돼지 보초병 업무를 맡긴다. 공사장 식당 비닐하우스가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로 엉망이 되기 때문에 밤부터 새벽까지 멧돼지가 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면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선길은 그럴 수 없다. 소아암을 겪는 아들이 있는 그는 부당한 상황에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하지만 며칠 밤을 새워도 멧돼지는 볼 수 없다. 사실 멧돼지는 그곳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현장 관리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현장 관리자는 서둘러 공사를 마치려고 한다. 선길은 다시 현장에 투입되고, 급격하게 진행되던 공사 끝에 결국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장 관리자는 사고를 최대한 축소하려고 애쓴다. 다른 인부들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의 말에 동조한다.

소설에는 크게 세 부류의 인간이 있다. 먼저 '관리자'들이다. 이들은 원칙보다는 본인의 이해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해관계에 따라 타인을 위험에 처하게 하기도 하고,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 반대편에는 그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오히려 비극을 맞이한다.

포클레인 기사 현경은 실력만을 믿어왔지만, 현장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고를 마주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현경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여러 번 되묻는다. "견디고 이겨냈고 이제 겨우 그 결실을 누릴 차례가 된 사람이었는데, 왜?" 여기서 현경은 '산 사람에게 착할 것이냐, 죽은 사람에게 착할 것이냐'라는 문제를 마주한다. 그는 사건의 부조리함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되면서 이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 이들 사이에는 동조자들이자 무심한 목격자들이 있다. 이들은 현실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비겁한 사람들이다.

이혁진 소설가는 한겨레 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누운배'와 후속작 '사랑의 이해'에서 회사로 대표되는 계급사회, 그곳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인물의 욕망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개성적인 색채를 보여줬다. 이번 신작도 전작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공사 현장에서 마주한 부조리한 상황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린다.

소설은 조직 내부의 갈등 상황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안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조직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결국 나중에 남아 있는 건 흔들리지 않고 남아있는 조직이다. 이 소설가는 그렇다고 그 연약한 사람들이 무너진다고 단정 짓지는 않는다. 이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그 연약함과 희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전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연약함은 나약함에 불과할 것인지, 희망은 욕망에 그쳐야 하는지, 인간에게 나약함과 욕망뿐인지"라고 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