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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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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길을 벗어나서는 길을 갈 수 없다. 길에 달라붙으면 또한 길을 갈 수 없다. 길을 간다는 것은 길에서 길을 떠남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지금 이대로는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나은 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 여기의 완전한 삶을 망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더 나은 상황,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생각들이다.

엄마와 가까이 살며 모셔야 하는 맏딸이 있다. 그녀는 엄마가 항상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힘들어한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엄마에게 심한 잔소리를 하게 되고, 엄마에게 심한 잔소리를 한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다.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또한 엄마에게 심한 잔소리를 하고 그것을 자책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6세 이전에 결정된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대중매체 등의 문화적 인식이 우리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오직 그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자기 파괴적 프로그램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다름 아닌 바로 그 프로그램을 부정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나를 추구하며 갈등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에너지를 고갈하며 불행을 느끼게 된다. 반면 그렇게 프로그램된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내가 삶을 살아간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삶이 '나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매 순간 최선을 추구하며 나를 살아간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이라고 해서 삶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왔음을 알아차리면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고 또 동시에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다.

엄마를 힘들어하고 심한 잔소리를 한 뒤 자책하고 괴로워하던 맏딸은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자신을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은 뒤 엄마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는 말의 뜻이다. 그녀는 더이상 엄마를 힘들어하지 않게 되고 엄마에게 하던 심한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길에서 길에 달라붙지 않고 길을 떠나는 모습이다.

깨어난 사람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모든 행위가 그저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이런저런 행위를 하면서도 평화롭다. 그는 언제나 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는 침묵의 증인으로 남아있다. 도(道)는 굳이 애쓰지 않는다. 어차피 다 내 것인데 애써 지킬 것이 무엇인가? 내 집에 있는 물건들에 굳이 내 이름을 써 붙일 필요가 있을까?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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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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