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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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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나에겐 슬프고 희망이 없을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1990년 8월 말, 겨레의노래 대구공연에 초대받아 아이들을 여름 내내 연습을 시켜서 출연시켰다. 작곡가 노영심과 같이 '이 작은 물방울 모여'·'고리'를 부르고, 가수 서유석과 같이 김민기 작곡의 '이 세상 어딘가에'를 공연했다.

이듬해 내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될 때 퇴임으로 없는 학교장의 결재를 받지 않고 공연에 참가했다는 복무위반이 징계사유에 들어있었다. 며칠 전 10·20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앞두고 시청 앞에서 결의대회가 있었다. 나는 발언을 요청받았지만 파업권이 없는 교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40여일 째 단식투쟁하는 한국게이츠 지회장 보기도 미안했다.

집회가 시작되고도 나는 발언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당황하는데 앞서 발언하는 민주노총 본부장 연설을 들으면서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런 마음에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이 났다. 나는 노래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이 세상 아무 데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하지만 이 젠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 온다 너무도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그동안 민주노총이 그렇게 투쟁을 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구속되고, 죽어나가면서 투쟁했지만 세상이 아직도 이 모양이다. 검사, 민정수석,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서른한 살 아들은 겨우 6년 일하고 50억을 퇴직금과 산재위로금으로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을 뿐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온갖 권력자들이 모여든다. 1%의 나라, 우리는 이 자본과 권력의 카르텔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근래 며칠 동안 청년들이 분노하는 사이에 인천의 스물아홉 청년은 45층 빌딩 외벽 청소를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 산재위로금은 얼마일까? 세상은 정말 나아지는 것일까? 언제쯤 일하는 노동자들도 억울하게 살고, 죽지 않고 주인으로 사는 세상이 올까? 노동자가 주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동으로 살만한 세상이 오기나 할까요?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나 할까? 1%가 된 이들은 꿈깨라고 말한다. 아직 멀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이듬해 내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을 때, 가난한 노동자였던 아내도 전노협 총파업으로 파티마병원에서 해고 되고 구속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30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20년 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30년 전 내 나이가 되는 아들은 정규직이 되었지만 강남의 반지하 원룸에 산다. 아들이 지금 내 나이만큼 되면 집이나마 한 채 가질 수 있을까? 금융을 취재하는 아들은 혹시라도 아비가 설마 모아둔 돈이 좀 있겠지 하고, 1억원만 빌려주면 크게 불려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돈이 어디 있냐고 하면 그동안 뭐했냐고 되묻는다. 어른들이 부동산 투기에 몰려들었던 것처럼 청년들이 너도 나도 주식투자에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아직도 이런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가 돈도 권력도 없고, 일하는 노동자가 흘리는 땀만으로는 오르는 땅값을 잡을 수가 없는 세상에다 집 한 채 사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어떤 놈은 6년 일하고 50억을 버는 세상이니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그래서 나는 민주노총 이길우 본부장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더욱 서럽게 들렸다.

오는 20일 하루 총파업을 두고 아마도 정치권력과 자본과 언론은 또 비난의 소리를 먼저 할 것이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 삼아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시켰듯이 노동지도자들을 구속시키려 들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잡은 손 놓지 않고, 더 많은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세상을 바꾸고 지구를 지키는 사회대전환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오징어게임'의 승자도 패자로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젠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누구라도 답해야 한다. 더 이상 청년,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입에서 '참 더러븐 세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답해야 한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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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전교조 대구지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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