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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여기와 저기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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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우리는 항상 '여기'에서 벗어나 '저기'로 가려고 한다. 여기와 저기가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이다. 여기와 저기는 같은 곳이다. 우리가 벗어나려는 노력과 움직임, 무엇을 향해 가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바로 미망인 것이다. 움직일 필요가 없는데 착각에 속아 자꾸 움직이려고 하고 또 움직이기 때문에 끝없이 고통을 받게 된다.

시간이 과거로부터 흘러와 미래로 흘러가는 듯이 보이는 것은 망치에게 세계가 온통 못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자연은 일렬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연은 동시에 도처에서 한꺼번에 발생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 속으로 부서진다. 이전과 이후는 '지금' 안으로 무너진다. 일직선의 시간은 '동시 발생' 속으로 무너진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현재의 순간은 모든 시간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초시간적이다. 이 초시간적 현재는 그 자체가 영원이다. 과거와 미래, 이전과 이후가 없는 순간이며 동시에 존재 전체를 보유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영원의 본성이며 '참나'이다.

닐 도널드 월시는 '신과 나눈 교감'에서 올바른 기도는 '간청'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간청의 기도는 결핍에 대한 믿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가 청하는 것을 갖지 못할 것이며 너희가 원하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다. 너희의 요구 자체가 결핍에 관한 진술이며 뭔가를 원한다는 너희의 진술은 정확히 그런 체험, 곧 모자람을 너희의 현실에 만들어내는 작용을 할 뿐이다. 왜 간청을 통해 그대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없는가? 그대가 간청한다는 것은 그대가 자신의 결핍을 믿는다는 뜻인데 그 믿음이 바로 그대의 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이 결핍으로 물들어 있다면, 이를테면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면 우리 앞에 뭐가 나타나더라도, 설령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이루어짐이 파란색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새 차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괴로움을 초래한다. 이 욕망은 차를 사기 위한 돈을 모으려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을 준다. 마침내 새 차를 사게 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새 차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새 차의 획득이 아니라 욕망의 갑작스러운 부재(不在)이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저기로 가려는 노력과 움직임을 없애야 한다. 저기로 가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사라지면 갑작스럽게 모든 문제가 해소된다. 우리가 지금 딛고 있는 이 현실이, 우리가 벗어나고자 했던 이 지옥이 바로 우리가 갈망하던 천국이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지금껏 눈을 감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우리가 착각하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평화로움과 행복을 볼 수 있다. 여기는 지옥이고 저기는 천국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지옥처럼 감겨 있었던 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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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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