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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포르투갈 신트라(Sintra·하), 기이한 상상력 가득한 궁전…9개의 천당과 9개의 지옥 경험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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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갈레이라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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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 궁전. 쌍탑처럼 하얀 굴뚝 두 개가 우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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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갈레이라 별장의 명물 '입회식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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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갈레이라 별장의 미로.
페나 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쌍탑이 있는 하얀색의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이슬람 양식의 외형에다 고딕과 마누엘 양식이 혼재된 이 건물은 신트라 궁전이다. 쌍탑은 사실 탑이 아니라 이 궁전의 주방에 연결된 굴뚝이다. 이 건물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궁전으로서 원래 8세기 무어인들이 만들었다. 그것을 15세기 초에 호아오 1세, 16세기에 마누엘 1세가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하였다. 14세기부터 1910년까지 줄곧 역대 왕들의 여름 별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성의 최대 볼거리는 포르투갈 왕실의 역사를 푸른색 아줄레주로 장식한 궁전 벽이다. 그러나 거대한 굴뚝 때문에 사람들은 이 궁전의 부엌에 더욱 관심을 둔다. 시간이 모자라 밖에서만 구경하고 마지막 목적지 헤갈레이라 별장으로 갔다.

이 별장은 이 땅의 원 소유자였던 헤갈레이라 자작부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별장을 지은 사람은 부자 상인 카르발류 몬테이루이므로 그 별명을 취하여 '백만장자 몬테이루의 궁전'으로도 불린다. 브라질에서 커피와 보석 등을 수출해서 큰 부자가 된 그는 1892년에 이 땅을 사들였다. 그리고 1904년에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인 루이지 마니니에게 건축을 맡겨 1910년에 완공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 1997년 마침내 신트라 시에서 인수하면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별장을 지은 몬테이루는 유명한 비밀결사 프리메이슨(Free mason) 회원이었다. 프리메이슨은 '보다 나은 인간, 보다 나은 세계'를 목표로 15세기에 만들어진 비밀결사이다. 실제 이 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프리메이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사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모차르트, 마크 트웨인,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제임스 먼로 대통령, 앤드류 잭슨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제럴드 포드 대통령, 컨트리 가수 빌 로저스, 흑인 인권 지도자 제시 잭슨 등이 모두 이 비밀결사의 회원이었다.


이슬람 양식 신트라 궁전 거대한 쌍탑
원래 용도는 주방과 연결된 하얀 굴뚝

부자상인 몬테이루의 헤갈레이라 별장
기하학 문양이 떠 있는 연못·예배당
곡선계단 따라 내려가는 입회식 우물
자연동굴과 조화, 수수께끼 같은 공간

유럽 땅끝마을 호카곶 언덕 빨간 등대
대항해시대 세상 향한 영광의 출발지



몬테이루도 당시 브라질에서 꽤 큰 부를 일군 사업가였다. 브라질은 노예제도가 가장 늦게 폐지되었으며(1888년 폐지), 또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 가운데 40%에 달하는 7백만명이 브라질로 끌려 왔다. 이런 정황들을 볼 때, 그 역시 노예를 이용해 부를 축적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이곳의 땅을 사고 별장을 지은 것이다. 프리메이슨이 추구하는 목표와 맞지 않는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회원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노예를 거느렸고 벤저민 프랭클린 역시 노예에게서 딸을 낳기도 했으니 시대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념과 구호만 있고 철학과 성찰이 없는 사적 모임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자신들만의 '인간'과 자신들만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진 자들의 비밀스러운 사교모임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별장 주인의 내력을 알게 되자 수수께끼 같은 상징과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이 기괴하고 음험하며 싸늘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어쨌든 이곳은 마누엘식 장식을 한 궁전으로부터 의미심장한 기하학적 문양이 떠 있는 연못, 아랍식 탑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이한 상상력을 발휘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그래서 건물마다 문양마다 자꾸 의미를 찾고 상상력을 동원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압권은 'Initiation wells(입회식 우물)'로 명명된 우물이다. 명칭으로만 보자면 프리메이슨 회원의 입회식 때 사용하는 우물이겠다. 아랍 양식과 미누엘 양식이 결합된 이 우물은 가파른 곡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게 설계되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돌고 돌며 내려가다가 가끔 위를 올려다보면 동그란 우물 입구를 통해 보이는 하늘이 장관이고 어둠 속의 빛으로 다가온다. 우물 배치와 계단의 수 등이 프리메이슨 룰을 따라 만들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아홉 바퀴 원을 그리도록 설계되어 있고 이것이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9개의 지옥과 9개의 천당을 상징한다고 한다. 즉, 내려가며 아홉 번 도는 것은 9개의 지옥을, 위로 아홉 번 보이는 하늘은 9개의 천국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바닥에 이르자 동굴이 나타났다. 껌껌한 동굴을 조금 걸어가면 앞에 갑자기 밝은 빛이 보였다. 동굴이 끝나는 곳이다. 그리고 다시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자 완전히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래로 갈수록 짙어지는 어둠과 컴컴한 동굴, 그리고 피안을 경계 짓고 연결하는 듯한 연못과 징검다리를 건너는 '의식'은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을 들게 하기 위한 설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백만장자 몬테이루의 궁전'으로 불리는 메인 건물은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양식과 함께 15~16세기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아 포르투갈에서 유행했던 마누엘 양식이 혼합된 5층 규모의 낭만적이고 독창적인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이 별장의 주인 몬테이루와 설계자 루이지 마니니에 대한 설명이 전시되어 있었다. 궁전 옆에는 궁전의 양식을 그대로 닮은 작은 예배당도 있었다. 왕궁 안에는 늘 성당이 함께 있는 것처럼 개인 별장이지만 궁전처럼 예배당도 건축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나선형 구조의 헤갈레이라 타워, 작은 돌을 모자이크하여 무늬를 만든 헤갈레이라 분수도 특이했다. 이런 목적 건물이나 장식물을 제외하면 이곳에 있는 자연 동굴과 인공 구조물이 혼합된 우물과 연못, 정원 등은 마치 수수께끼 같은 은밀함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별장을 나와서도 한동안 무엇을 다 못 보고 나온 것처럼 언제 다시 한번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곳이 헤갈레이라 별장이었다.

이렇게 세 곳을 돌다 보니 어느덧 하루해가 다 지났다. 다시 아침에 주차했던 곳으로 이동하면서 기사는 열심히 헤갈레이라 별장의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열정 때문에 영어가 짧아 못 알아듣는다는 고백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예의 적당한 추임새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헤갈레이라 별장은 이곳 신트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꽤 화제가 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다시 아침 일찍 체크 아웃을 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여행지 리스본으로 가기 전에 유럽의 땅끝마을 호카곶에 들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신트라를 빠져나와 20분쯤 달리자 바다가 나타났다. 호카곶의 정식 명칭은 '카보 다 호카(Cabo da Roca)'이다. 북위 38도 47분, 동경 9도 30분에 있는 유럽 대륙의 최서단이다. 대서양으로 돌출된 곳으로 14세기 말까지만 해도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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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곶의 해안 절벽과 포르투갈 최초의 등대.
호카곶에 내려서자 세찬 바닷바람이 몸을 밀어내었다. 노란 꽃이 흐드러진 언덕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그 너머로 대서양이 넘실대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주황색 지붕의 등대가 그림처럼 서 있다. 1772년 세워진 포르투갈 최초의 등대인데 여전히 주변을 지나는 배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등대는 1842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란다.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절벽에 부딪혀 부서져 내리는 하얀 포말의 기세와 소리는 이곳이 세상 끝이라는 경고처럼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런 바다 풍광보다 더욱 시선을 끄는 것은 십자가가 걸린 커다란 기념비였다. 기념비에는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Onde a terra acaba e o mar comeca)'라는 포르투갈 국민 시인 루이스 카몽이스의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세상 끝 너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난 포르투갈 탐험가들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은 시다. 국경의 삼면이 스페인에 둘러싸인 서유럽 변방 국가 포르투갈의 출구는 바로 이곳 바다였다. 스페인의 콜럼버스에 앞서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바다 너머 신세계를 향한 도전에 나섰다. 그 후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경유하는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그렇게 인도, 마카오, 브라질로 나아가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15세기 말에는 스페인과 함께 세계를 양분해 가졌다고 할 정도로 인도 고아, 중국 마카오, 브라질, 아프리카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식민지로 삼았다. 그 시절 포르투갈은 식민지에서 실어 온 향신료와 금, 커피 등을 교역하면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처럼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대항해시대 영광의 출발지가 바로 이곳 호카곶이었다.

권응상 (대구대 교수)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이곳 세상의 끝에 서면, 누구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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