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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찌질한 권력, 찌질한 글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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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2018년 11월26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대표작에는 '마지막 황제'도 있다. 이때 마지막 황제는 중국 청나라 최후의 임금 선통제를 가리킨다. 선통제 푸이(溥儀)는 영화 속 1950년 당시 44세였다.

이때 푸이는 소련군의 감시를 받고 있는 중국인 전범이었다. 영화에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그런 인물도 못 되었다. 그는 1908년 불과 3세에 황제가 되었다. 1911년 중국의 민주주의를 도모해 일어난 신해혁명 이래 그는 자금성에 연금된 채 살아왔다. 푸이는 영국이나 미국 유학을 꿈꾼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 국가 만주국의 황제로 등극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그는 그나마 실패하고 소련군의 포로가 된다. 그래서 영화 첫머리에 전범으로 등장했다.

영화는 푸이가 자금성 입장권을 끊어 안으로 들어서면서 경비원의 아들에게 "난 중국의 황제였단다. 옛날에 여기서 살았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게 마지막 황제는 마지막까지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 14대 임금 선조도 선통제에 못지않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태어나기 466년 전의 같은 날, 즉 1552년 11월26일에 태어난 선조의 '찌질한' 면모도 유명하다. 선조는 무려 41년이나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가 보여준 찌질한 면모는 누가 자신을 왕위에서 끌어내리려 들지 않나 끝없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전쟁 직전에 계축옥사를 일으켜 선비를 1천명이나 죽였고, 이순신에게 고문을 가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양위하겠다"는 말로 신하들을 겁박했다.

1950년 전쟁 때도 그랬지만 백성의 절반이나 죽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피해를 책임진 정치가는 없었다. 선조를 비롯한 지배층은 성리학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방법으로 오히려 정권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경기도 구리시 선조 무덤 안내판은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유학을 증진하였기 때문에 선조의 시대를 성세(盛世)라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잣과 꿀' 고사의 도학자 정붕은 연산군에게 "사냥을 그만두라"고 하다가 영덕으로 유배되었다. 신라 김후직은 무덤 속에 들어서도 "사냥을 그만두라"고 진평왕을 말렸다. 바른 말을 해야 글이고, 그런 글을 써야 문인이다. 문인이라는 자긍심이 있다면 찌질한 감상 토로에 멈춰서는 안 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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