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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책 한 권 봉정할 날

2022-04-29
정만진 소설가

1932년 4월29일 한인애국단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일본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을 처단했다. 윤 의사가 힘차게 던진 그날의 폭탄은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등에게도 중상을 입혔다.

당시 중국 국민당 총통 장개석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격찬하고 감동했다. 당연히 '윤봉길의 조국'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들은 그로부터 9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4월29일만 되면 변함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윤봉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 이력서를 제출할 때 부모, 아내, 아들을 '가족'이 아니라 '유족'으로 표현했다. 이미 장렬한 죽음을 각오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섯 살, 세 살 두 아들에게 유서 내용의 시를 남겼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 태극에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으라 /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업슴을 슬퍼하지 마라 / 사랑하는 어머니 잇으니 (하략)"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올 때 윤봉길은 '슬프다 내 고향아'라는 시로 감회를 나타내었다. "(전략) 내가 어렸을 때는 / 쾌락한 봄 동산이었고 / 자유의 노래 터였네 / 지금의 고향은 / 귀 막힌 벙어리만 남아 / 답답하기 짝이 없구나 / (중략) 떠나는 길 기구한 길 / 산 넘고 바다 건너 / 구렁을 뛰어 넘고 / 가시밭 밟아 가네 / 잘 있거라 / 정 들인 고국강산아"

그가 남긴 한시 중 '대나무를 노래함(詠竹)'을 읽어본다. "그대는 곧게만 서 있고 굽힐 줄 모르는데(此君挺立不許回) 마음의 문은 그 누가 열어주었는가(心契疏通誰爲開) 언제나 굳은 절개 사철 내내 봄빛이라(節貫四時春色准) 천 길 높이 바람 불고 빗소리도 들리는데(風高千尺雨聲來) 어쩌다가 광주리로 짜여 임금께 바쳐졌나(敢承厥匪登朝闕) 한갓 장대가 되어 낚시터에 드리워졌나(만作長竿向釣臺) 가지 하나 문득 꺾어 피리로 불어보니(試把一枝堪有問) 강남 옛 가락 사람을 슬프게 하네(江南古調使人哀)"

마지막이 '사람을 슬프게 하네'라서 그런지, 의사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아련히 애잔해진다. 의사를 기려 장편 '소설 한인애국단'을 쓰던 시절이 떠오른다. 상하이 홍구공원을 찾아 책 한 권 받들어 올릴 날은 언제 오려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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