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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수요칼럼] 어버이날 소묘

2022-05-11

어버이날 요양원 대면 면회
금반지 건네주는 시어머니
아들 내외와 함께한 한나절
'이제 가거라' 재촉하는 마음
어버이는 매일 내리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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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 (소설가)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김밥 재료를 손질하는 내 옆에서 남편은 전복을 다듬는다. 이제 음식물 반입도 허용된단다. 어머님이 평소 좋아하는 고기 요리는 자신이 없고,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음식으로 준비한다. 봄이 오기 직전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신 어머님. 그간 코로나 상황 지침을 핑계 삼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면접권이 제한되었던 그 기간을 너무 적극적으로 누린 불효자였다. 평생 어머님을 모신 시누님의 노고가 현재진행형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식 노릇에는 뒤처지곤 했다.

요양원 가는 길마다 아카시아꽃 행렬이다. 우리 산천에 아카시아가 이렇게 많았나 싶게 천지가 흰꽃 동산이다. 차창을 내려 향을 들여본다. 지는 꽃잎이라 그런지 향기가 쉽게 배어들진 않는다. 요양원 마당, 오월의 다사로운 볕 아래 면회용 테이블이 놓여있다.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우리 말고 면회객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미리 다녀간 것일까. 이토록 화창한 날에 이다지 쓸쓸한 어버이날이라니.

'실버카'를 밀며 어머님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신다. 아카시아 흰꽃잎처럼 미소가 벙글었다. 집에 계실 때는 부축해도 걷기 힘드셨는데 한결 좋아진 걸 보니 맘이 누그러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작정한 일인 듯 손가락에서 금반지를 빼내 건네신다. "야이야, 결혼할 때 좋은 반지 못 해준 게 여태 맘에 걸린다." 순식간의 일이라 나도 모르게 움찔 물러난다. 단 한 번도 좋은 반지를 못 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나는 진심으로 손사래를 친다. 당황해하는 내 표정을 살피며 어머님은 "이건 내 진심이다. 진심이다"를 몇 번이고 뇌신다. 혹시 이런 상황이 치매인가 싶어 남편을 쳐다본다. "엄마 치매는 최근 단기간 것을 기억 못 한다. 옛날 일은 기억 다 하신다. 그러니 엄마 마음 편하게 해드리자." 실랑이를 하는 대신 남편은 반지를 받아 든다.

전복죽 한술에, 김밥 몇 개와 참외 한 조각을 드신 어머님, 혼잣말처럼 "아카시아가 많이 폈네" 하신다. 남편이 잽싸게 아카시아꽃 두어 송이를 따온다. 절정 지나 개미에 뜯겨 누레진 아카시아꽃에다 어머님은 손바람을 일으켜 향을 맡으신다. 잠시 테이블 주변에 향이 머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지고 만다. 잠시 뒤면 떠나고 말, 막내아들의 체취라도 간직하려는 듯 잔향을 좇는다.

낮에는 말동무도 있고 실내 산책도 하니 바쁘게 지나간단다. 개인 방에 드는 저녁이면 외로움이 몰려온단다. 그때는 기도하신단다. 식구들 건강과 남은 생, 지루함을 잘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옆 야산에서 낮닭 울음이 길게 들린다. 고요를 깨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겠는데, 어머님은 전혀 듣지 못한 기색이다. 자주 오지 않을 이 순간에 집중하는 중이므로 세상의 소요(騷擾)가 들어찰 틈이 없다.

어머님 성화에 반지를 끼는 시늉을 한다. 손 고운 어머님의 반지가 마디 굵은 내 손가락에 맞을 리 없다. "제겐 맞지도 않는걸요. 반지는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인데 끼고 계세요." 선별해서 듣는 어머님의 귀에 내 목소리가 닿을 리 없다. 오래된 의자는 삐걱이고, 오월 햇빛은 따가워지는데 마음만은 다사롭다. 이제 가보거라. 재촉하는 어머님의 말씀이 정말 가라는 뜻이 아님을 안다. 쉽사리 일어서지 못하는 그 마음을 먼저 알고 어머님,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힘겹게 실버카를 밀며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어머님. 어버이날 한나절, 자식은 하루 의무 행사로 그치겠지만, 어버이는 매일매일 '내리사랑앓이' 중임을 알겠다.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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