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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마음의 근육을 동시에 단련…인종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톱에 오르다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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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킴·라건아 (미국명 리카르도 래틀리프). 연합뉴스

앞서 끝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클로이 킴'(한국명 김선)은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2연패에 성공했다. 그녀의 쾌거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나온 것이라 더더욱 대단했다. 그녀는 갖은 인종차별적 SNS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평창올림픽에서 받은 금메달을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그녀는 이번 올림픽 뒤에도 가족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인터뷰했는데, 이에 백악관은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TF를 조직하겠노라고 발표했다.

만약 미국 다이빙계의 전설 '새미 리' 옹(翁)이 아직 살아계셨다면, 이런 클로이 킴을 만나 잘 보듬어 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20년생인 새미 리는 여러모로 클로이 킴에 모범이 될 만한 선구자였다. 한국계 미국인, 상대적으로 작은 체형, 아시아인 최초, 명문대생, 최초의 올림픽 2연패,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운 용기 있는 사람인 점이 그렇다. 새미 리는 학창 시절 1주일 중 수요일 딱 하루만 다이빙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날만이 유색인종이 수영장을 이용하도록 허용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새미 리가 연습을 하고 나면 물이 더럽혀졌다며 물을 다 빼고 새로 갈아 넣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새미 리는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 결국 보란 듯이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해냈다.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이런 일은 사실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는 과거 금성통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후국기'의 사례가 있다. 화교였던 그는 아버지의 반대로 '귀화'라는 두 글자를 집에서 감히 꺼낼 수조차 없었고, 그런 탓에 선수·지도자 생활 내내 해외로 갈 때마다 공항에 억류되는 등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출중한 실력이 있음에도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한(恨)만큼은 자신의 아들의 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풀게 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후인정이다. 후인정은 국가대표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해는 감독으로 KB 손해보험을 잘 이끌어 팀 역사상 최초의 준우승을 일궈냈다.

'라건아'(미국명 리카르도 래틀리프)의 사례는 앞서 본 4명의 케이스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가난이 지겨워 스스로 한국행을 결정했고, 다시 스스로 한국 귀화를 결정했다. 그는 그 뒤 온몸이 부서져라 국가대표팀을 지탱해 왔는데, 몇 년 전 자신과 가족이 인종차별적 SNS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고 폭로하여 많은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얼마 전 통산 리바운드 신기록을 세운 뒤 그는 다음과 같은 뉘앙스로 말했다. "인종차별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한다. 잘못도 없으면서 사과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는 한국에 온 뒤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최고조로 성숙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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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당구 여신 '스롱 피아비'의 사례는 더 훈훈하다. 캄보디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시집을 온 그녀는 한국과 캄보디아 양국에서 길거리 사인을 요청받는 스포츠 스타가 된 지 벌써 오래다. 당구를 쳐서 번 돈으로 언젠가 캄보디아에 학교를 건설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 어쩐지 그녀의 눈빛은 사비를 들여 날아와 한국의 다이빙 선수들을 가르치던 새미 리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선수 생활 내내 몸의 근육만 단련했던 선수들 사이에서 그들은 차별과 편견에 맞설 마음의 근육을 함께 단련해왔기 때문일지니.

마지막으로 오늘도 싸우고 있을 스롱 피아비 선수에게 새미 리가 생전에 남긴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꿈을 잃지 말고 도전하세요. 난 그랬더니 내 이름을 딴 학교가 생기더군요."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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