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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손님으로 살아가기

2022-06-21

[3040칼럼] 손님으로 살아가기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지난 현충일 연휴 인천공항 국제선 하루 이용객이 4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 이후 2년여 만에 최다 규모이다. 아직 완전한 종결로는 볼 수 없지만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하나둘 돌아가는 모습은 대부분 사람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고 오래 기다려온 일일 것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범세계적 재난 상황을 극복하고 팬데믹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며 보내야 할지 각계에서는 여러 분석과 전망을 제시했다. 그중 유념해야 할 것은 더 강력한 전염병이 점점 더 짧은 간격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코로나19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유엔(UN)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이러한 감염병 증가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에서 멸종 위기 야생 동물의 출현을 목격했고, 미세먼지와 황사가 걷힌 선명하고 맑은 봄 하늘을 참으로 오랜만에 누릴 수 있었다. 잦은 이동과 만남, 과한 생산과 소비가 자연 속에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괴롭혀왔던 걸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은 제주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현택훈 시인의 동시집이다. 제주의 지명과 제주에서 자생하는 동식물들, 제주 방언으로 가득한 동시집을 읽으며 이미 여러 번 가보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제주로의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경험한 제주는 산과 오름, 바다와 돌담으로 이어진 길을 다니며 자연을 감상하고 경험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대개는 관광지였고 사람들로 혼잡했다. 그러나 이 섬의 주인은 노루나 억새, 꿩을 비롯해 두점박이사슴벌레나 제주고사리삼 등이라고 말해주는 시집을 읽으며 그들이 주인으로 사는 집에 철저한 '손님'의 입장으로 한 번 더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중 시 '선작지왓 귀룽나무'는 제주, 즉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도 1천500~1천700m에 있는 고산지대 초원이다. 시 속에서 귀룽나무는 백록담이 보고 싶어서 선작지왓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그곳에서 뭉게구름이 되기로 한다. "먼발치에서/ 이렇게 널 볼 거야"로 마무리되는 시를 읽으며 독자는 생각할 것이다. 직전까지 와서, 고지가 눈앞인데 왜 멈추는 걸까.

대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곁에서, 가까이에서 돌보고 필요를 살피는 사랑도 있는 반면 거리를 두고 지켜보아야 하는 사랑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달려왔다. 목표한 바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추는 걸음을 섣불리 한심하다거나 노력이 부족하다 할 수 없다. 그 목표가 누굴 위한 것이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통찰이 선행될 때 어떤 멈춤은 사랑과 회복을, 아름다움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연 앞에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을 멈춰 세워야 할 때가 아닐까.

여러모로 여행은 일상을 환기하고 쉼을 제공하여 다시금 생활을 이어 나갈 힘을 충전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주인'이 된 여행이 아닌 철저히 '손님'의 입장에서 여행지를 방문해보면 어떨까. 나아가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누군가에겐 여행인 하루하루를 소중한 곳에 초청받아 방문한 손님의 입장으로 사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귀룽나무의 멈춤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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