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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단양적성비~대관령 양떼 삼양목장, 백두대간 풍광은 神의 그림일까…양들 노니는 대관령엔 목가적 음악이 흐르네~

2022-07-29

1500년 시간 딛고 빛 본 '단양 적성비'
삼국사기의 인명 증명할 비문 발견
성재산 오르면 온달산성·남한강 뷰
신라가 단양 뺏아 쌓은 '적성산성'도
해발 933m 양떼목장 평화로운 정취
양 방목지는 매일 구역별 이동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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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양떼목장의 양들.
얄푸른 나무 사이로 강이 흐른다. 옛적에 아리수라 불렀던 남한강. 수려한 협곡으로 구불구불 흐른다. 멈춤 없이 흐르는 강은 역사다, 어머니다. 신(神)이 천지를 다 돌볼 수 없어 강을 만들고, 어머니를 만들었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했다. 그 문명은 모두 강가에서 탄생했다. 황하·유프라테스·나일·갠지스강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였다.

저 생명의 강은 말없이 간다. 과거 현재 미래를 어부바하고, 물결 넘실대며 흘러간다. 7월의 녹음도 저 강으로 흐른다. 여긴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전망대이다. 적성비까지 걷는다. 태양의 쨍쨍한 볕에 나를 빨래하고 싶다. 적성산성 성벽을 지나 정상 밑 단아한 비각에 선다. 다소 깨져 나갔지만, 단양 적성비(국보 제198호)는 신라 진흥왕(545~550) 때 건립되었다. 그러나 관리 부실로 산성 내에 버려져 있었으나, 1978년 1월6일 하방리 적성산성에 답사 나온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 정영호 교수팀에 의해 발견·조사되었다. 당시 단양에는 간밤에 눈이 내렸다. 그날 오후 2시경 눈이 녹아 땅이 질퍽거렸다. 답사자 한 분이 흙 묻은 등산화를 털기 위해 땅에 묻혀있는 반석 위에 발을 올려 내려보니, 그 돌 위에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사실을 조사하고 발굴한 것이 단양 적성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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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삼양목장의 풍력단지 풍경.
당시 출토 현장은 비의 표면이 하늘로 향하고 밑이 북쪽을 향해 비스듬히 누웠고, 30㎝ 정도가 흙에 묻혀 있었다. 비문은 편편한 큰 화강암을 물갈음으로 다듬어 얼핏 차돌 같아 보이는 돌에 애면글면 한문으로 얕게 음각하였다.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어 비면과 자획(字劃)이 또렷했다. 모두 22행 430자 정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비에 남아 있는 글자는 288자이고, 파편으로 수습된 글자가 21자이므로 309자의 글자가 해석 가능하다. 그 비가 지금 1천500년의 시간을 딛고 우뚝 서 있다. 발견 후, 이 적성비가 일으킨 파문은 엄청났다. 전국 신문에 대서특필 됐다. 국민은 어깨춤을 추고, 역사의 풀장에 다이빙하며 아아 대한민국을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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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때 건립된 단양 적성비(국보 제198호).
왜냐하면 한국 고대사는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초벌 타작하는 데, 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증명할 사실적인 역사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계 역사학자들이 입을 맞춘 듯이 이렇게 말하면, 한국 역사학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솔직하게 삼국사기의 기록을 증명할 한국의 역사 자료가 있기는 한가. 참으로 어둡고 영혼 없는 한국사였다. 근데 1천500년 전의 적성비에서 삼국사기를 증명할 비문들이 발견된 것이다. 이 비문은 난해했는데, 서울대 변태섭 교수가 쉽게 설명했다. 즉 "진흥왕이 이사부와 비차부 무력 등 10명의 고관에게 하교하여 신라의 척경(拓境)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사람 야이차의 공을 표창했고, 후에도 야이차처럼 충성을 바치면 포상을 내리겠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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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적성산성.
여기에 나오는 512년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 김유신의 할아버지 무력, 비차부 라는 인명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인명이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 자료가 부족해 허덕이던 한국에 이 무슨 난데없는 단비인가. 가뭄 때 양철지붕에 내리는 소나기 소리처럼 비문은 우리 모두를 두들겨서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삼국사기는 역사의 정통성을 찾고 민족의 등뼈로 자리하게 되었다.

약간만 위로 오르면 성재산 정상이다. 오르고 내려오는 트레킹 로드는 몽환적이다. 숲길이 다하면 온달산성 쪽 시야가 터지고, 거기엔 남한강이 유유히 흘러온다. 저기 더 먼 곳 정선에서 흘러오는 강물, 어디서 아우라지 노래가 들려 올 것만 같다. 근자에 복원한 적성산성 위에 발을 디뎌본다. 신라가 단양을 빼앗아 쌓은 산성이다. 산성은 돌의 걸작이다. 역사가 의식의 흐름이라면, 의식은 돌의 흐름이다. 우리 의식은 인류가 영장류로 분리된 후, 99%의 삶을 살아온 구·신석기시대에 만들어졌다. 인류는 돌에 그림을 그리고, 도구를 만들고, 음각 양각을 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고, 성을 쌓고, 신을 만들었다. 의식은 돌을 통해 흘러오면서 역사를 만들었다. 당장 고령 양전리 암각화, 반구대, 석굴암, 만리장성, 앙코르와트 등등. 세계적인 문화유적은 대부분 인류의 의식이 돌에 응집된 것이다. 단양 휴게소로 돌아와 두 시간 더 달려 대관령 양떼 목장에 도착한다.

양떼목장은 어떤 곳일까. 1988년에 설립되었고, 약 6만2천500평의 면적에 양들을 방목 사육하고 있는 양 전문목장이다. 목장 정상 기준 해발은 933m이다. 자작나무 쉼터를 지나 산책로로 간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신의 붓질 같다. 고원 위 하늘과 맞닿은 듯한 그 공간을 걸으면 감정이 카타르시스 되고, 갇혀 있던 영혼이 해방되는 것 같다. 트레킹 로드는 양털처럼 보송보송하다. 가장 높은 곳에 선다. 일망무제다. 목초지에는 양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뒤쪽에는 앉아 쉬는 양들도 있다. 양은 배가 부르면 절대 먹지 않는다. 정말 부러운 본능이다. 삼시 세끼 먹고, 틈틈이 간식 먹고, 술과 차 같은 기호식품을 먹어야 하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입을 슬쩍 쳐다만 봐도 으스스하다. 인간의 입, 저 작은 입으로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가. 대자연까지 뜯어서 먹어치우는 끔찍한 그 입.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만들고 파괴하는 입들, 인간 실존의 블랙홀인 그 입들.

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양 방목지는 매일 변경된다. 이렇게 방목지를 바꿔가며 순환하는 방법을 '윤환방목'이라고 한다. '윤환방목'은 양에게 매일 신선한 목초를 공급해 주고, 목초가 새로 자랄 수 있는 여유 시간을 준다. 즉 초지는 모두 30여 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매일 방목지를 바꿔가며 이동해도 25일 전후로 목초가 새로 자라있는 1번 방목지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테면 윤환이 되는 셈이다. 건강한 양과 목초를 위해 윤환방목이 꼭 필요하다. 초식동물인 양은 순하디 순한 동물이다. 인간의 선한 본성과 양의 순한 본성의 DNA가 톱니처럼 물려있다. 한편으로 인간은 맹수의 잔인성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은 지상의 각종 생명체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다. 그게 영혼이 된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이미지 그대로 평화였다. 어쩌면 내가, 어쩌면 당신이 즐겨 듣는 목가적인 음악 같기도 했다. 목장은 마치 거대한 교회 종의 거푸집 같은, 오목하고 편안한 장소에 축사가 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허공의 종소리다. 저 종의 울림이 퍼지는 곳, 거기에는 양 떼를 몰고 다니는 목자의 말씀이 있다. (마18:12)"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는냐." (마18:14)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슴에 안고 흠뻑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자태가 흰 구름에 클로즈업된다. 양떼목장 답사를 마치고, 삼양목장으로 이동을 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동해 전망대에 먼저 올랐다. 양떼목장과는 달리 바람이 너무 거셌다. 우리는 몸을 가눌 수 없는 노대바람, 왕바람에 정신마저 날아갈 지경이다. 그중에도 아스라하게 동해 바다와 강릉이 비몽사몽의 꿈처럼 몽롱한 비경을 연출한다. 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 공포감마저 든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셔틀버스로 돌아 나온다. 오늘 정말 바람을 단단히 맞았다. 목책로 구간별, 바람의 언덕, 숲속의 여유, 사랑의 기억, 초원의 산책, 마음의 휴식 길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마25: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오른편에 두는 양처럼 살 수 있을까. 저 목장의 양처럼 하느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글·사진=김찬일 <시인·방방곡곡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문의:대관령양떼목장 (033)335-1966.삼양목장 (033)335-5044

☞내비주소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 마루길 483-32 (양떼목장)

☞트레킹 코스 : 단양 휴게소 적성산성 - 대관령 양떼목장 - 삼양목장

☞인근 볼거리 : 강릉커피거리, 강릉향교, 오죽헌, 경포대, 선자령, 강릉시립박물관, 강릉 임영관, 강릉 대도호부 관아, 안반데기, 월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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