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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창] 말(言語)이 순해져야 세상도 편안해져

2024-04-17

선거기간내 세상 어지럽힌
가짜 말 남탓 말 우기는 말…
이젠 서로 상처 보듬어주자
양심과 도덕 예의염치 말로
품격있는 공동체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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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말이 독해졌다. 거칠어졌다. 거세졌다. 더러워졌다. 지저분해졌다. 말이 말이 아니다. 말 감옥이 뚫린 모양이다. 탈옥한 말들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엄혹한 세상에서도 안 그랬다. 6·25전쟁 중 포성 속에서도 이러지는 않았다. 민주화를 외치며 함께 팔 흔들 때도 이러지 않았다. 큰 걱정이다.

공동체를 이룰 때 사람들은 가슴속에 말 감옥 몇 개씩 지었다. 어떤 사람은 어설프게 지었고, 어떤 사람은 튼튼하게 지었다. 예의염치 감옥, 양심 감옥, 도덕 감옥, 자존심 감옥, 품격 감옥 등 사람마다 다양한 양식의 말 감옥을 지었다. 영국 사람은 젠틀맨십(Gentlemanship) 감옥, 프랑스 사람은 톨레랑스(tolerance) 감옥, 미국 사람은 다이버시티(Diversity) 감옥, 독일 사람은 게마인츠(Gemeinschaft) 감옥을 주로 선택했다.

누구든 공동체 발전에 해가 되는 말은 감옥에 가두었다. 함부로 사용하면 서로 낯 붉힐 말도 가두었다. 욕설을 먼저 가두었다. 성 언어를 포함한 각종 외설스러운 금기어를 골라 가두었다. 혐오의 말, 분열의 말, 비방의 말, 무고의 말, 거짓의 말을 가두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예단의 말, 근거 없는 말, 지르고 보는 말을 찾아내어 가두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타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을 가두기도 했다.

전쟁통에 살아남는 일이 급해서 감옥을 지키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욕설 감옥부터 열었다. 감옥을 나온 욕설은 갇혀있던 분풀이라도 하듯 온 세상을 휘저었다. 때맞춰 장난감이 없던 어린애들이 장난감 대신 욕설을 불러내 같이 놀았다. 지체 높은 어른들도 아무 생각 없이 욕설을 썼다. 잠깐 사이 어지간한 욕설은 일상의 말이 되었다.

감옥 지키는 힘을 덜어 편하게 된 사람은 더 험한 말도 풀어주었다. 그와 더불어 세상이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갇힌 말의 탈옥을 부추겼다. 돈과 권력이 생기면 탈옥을 돕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탈옥한 말을 이용하는 사람도 생겼다. 1인 방송 시대가 되면서 탈옥한 말과 야합하는 사례가 늘었다. 교통수단,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선거철을 맞아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말 감옥을 유지하겠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편 가르는 말을 붙잡아 두는 사람은 여지없이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 말이 멀쩡한 사람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가짜 말, 잘라낸 말, 짜깁기 한 말에 인격이 무너졌다. 변명하는 말, 우겨대는 말, 남 탓하는 말, 덮어씌우는 말에 품격이 사라졌다. 편 가르는 말, 논점 흐리는 말, 무시하는 말에 신뢰가 무너졌다. 억울하지만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탈옥한 말을 다시 가둘 때까지.

감옥을 처음 열어 준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합당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면 엄벌해야 한다. 그런데 감옥 허물기에 동참한 사람이 너무 많다. 독한 말을 내보낸 사람을 대놓고 감싼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오히려 떠밀려 문을 연 사람을 가리키며 책임지라고 몰아붙인다. 나쁜 말이 사람을 나쁘게 만들었다. 나쁜 말이 세상을 나쁘게 만들었다.

선거가 끝났다. 다시 건강한 대한민국 공동체를 생각하자. 말의 습격으로 입은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자. 말 감옥을 재건하자. 탈옥한 말을 잡아들이자. 양심과 도덕의 말, 예의염치의 말을 쓰는 품격 있는 세상을 만들자. 말이 순해져야 세상도 편안해진다.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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