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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노인은 문학 속에서도 외로움과 싸운다

2024-05-14

역할의 상실과 배우자 사별
친구들 보내는 슬픔 겪으며
심리적 고독을 느끼는 노인
이웃으로서의 관심이 바로
노인문제 해결 열쇠일지도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노인은 문학 속에서도 외로움과 싸운다
시인

#노인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사회에서의 노인 문제를 다룬 기사들이 꽤 보인다. 이즈음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게 노인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2020년 현재,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5년(남성 80.5년, 여성 86.5년)이다. 65세를 노년기의 시작점으로 잡으면 30년 가까운 긴 기간이 노년기가 되는 셈이다. 인구의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데,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50만명을 훨씬 넘어 전체 인구의 16.5%에 이른다.

노인들은 늙음에 따른 개인적 문제들을 저마다 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사회적 차원의 문제가 야기된다. 노동 인구의 감소와 부양 부담의 증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노인들은 급속한 산업 기술의 발달과 근로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늦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가운데 신체적 노화는 의료비의 지출과 돌봄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가족으로부터의 소원(疏遠)을 야기하여 외로움과의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인을 다룬 문학 작품들도 대개 그런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가족 간의 정과 불화는 물론, 사회에서의 소외로 인한 격리감이 고조됨으로써 외로움과의 싸움이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듯하다.

#필립 로스

얼마 전 작고한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는 2001년 자신의 인생을 민감하게 투영한 문제작인 '죽어가는 짐승'을 발표,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을 그려냈다.

70세의 주인공 데이비드 케페시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대사만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늙어간다는 것과 죽음이 멀지 않음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그런 '막다른 길목'에서도 그는 여전히 들끓는 욕망과 애욕에의 집착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사랑을 믿지 않는 상태로 제자의 아름다운 외모에 현혹되어 끌리게 되지만, 점차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면서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그의 사랑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자는 도망쳐 버리는데, 그제야 그는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리워한다.

이 소설은 생에 대한 회고와 죽음을 앞둔 자의 서글픈 성찰을 통렬하면서도 우아한 문체로 그려낸다. 배우 벤 킹슬리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엘레지'(2008년)의 원작이기도 하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에브리맨' 역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다. 삶과 죽음, 나이 듦과 상실이라는 문제를 사유한다. 주인공 '그'는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보통의 존재인 '한 남자'다. 로스는 이 소설을 통해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얘기한다. 젊은 날의 건강했던 때를 추억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노인의 삶은 서글프고 막막하다. 그렇지만 늙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일이며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기도 함을 민감한 문체로 성찰해 보인다.

#가족의 힘

한국 소설에서 노인 문제는 상당 부분 가족 문제로 드러나는 듯하다.

이청준의 '눈길', 최인호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등에서 늙은 어미의 모습을 통한 모성의 아픔과 희생이 강조되는 것도 특이하다. 모성은 본능적이고 절대적으로 묘사된다. 한승원의 '버들 댁' 역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전형적인 이 땅의 여성 노인을 다루고 있다.

이와 달리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연작에서 보여준 '억척 어멈'의 딸들의 이야기는 '억척 어멈의 이중성과 가족의 냉혹한 실체를 꿰뚫어 보는 세대의 관점'을 드러낸다. 박완서 소설은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늙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것'임을 보여주면서 '젊은이와 똑같이 온갖 감정이 고스란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이와 체면이라는 허위적 의식에 의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추어야 하는 인생에 대한 재발견을 시도하면서 인생의 황혼기에 맛보는 삶의 숨겨진 진실을 다룬다'고 평해진다.

누군가는 작가들의 작품론을 통해 "노인들의 삶이 시간의 거부로부터 시간의 수용으로 나아간다는 특징을 지닌다"며, 인간의 삶이 시간과의 투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시간과의 화해에 이르는 긴 여정임을 확인하기(조희경)도 한다.

신체적 능력의 쇠퇴는 노인의 삶을 의존적으로 만든다. 일상생활에서 배우자와 자녀 등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우리 문학에서 노인들이 겪는 가장 절실한 문제가 가족 간의 불화와 화해의 문제인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쨌든 노인 문제 해결은 어렵다. 무엇보다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 경제적인 대처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역할의 상실과 배우자의 사별, 친구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으면서, 노인들은 심리적으로 소외, 고독 등을 느끼기 쉽다. 이런 위축된 삶을 보듬고 힘이 되어주는 건 무엇보다도 가족의 역할이다. 노인을 다룬 문학 작품들이 한결같이 그 점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런 가운데 김훈은 단편 '저녁 내내 장기'를 통해 우리 시대 독거노인들의 처지를 보여주는데, 그는 이 소설을 '우리의 한 이웃'으로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 어쩌면 이러한 '이웃으로서의 관심'이 바로 노인 문제를 해결할 열쇠일지도 모른다.

한때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런 내용을 담은 노래가 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노사연의 '바램')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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