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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자유로운 영혼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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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변호사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국선전담 변호사들과 '그리스인 조르바'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사람들이 본문을 인용하여 남긴 글들을 검색해보니 이 책이 나에게 운명의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유 빼면 시체인 인물로서 거칠면서도 신비한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화자인 '나'는 책과 지식에 매몰되어 있던 젊은 그리스 지식인이다. '나'는 박해받는 그리스인 동지들을 돕기 위해 카프카스를 떠나면서 친구가 남긴 조언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서고자 크레타 섬으로 향한다. 크레타 섬에서 갈탄광 채굴을 하면서 농민과 노동자 계급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60대의 조르바를 만난다. 조르바는 자신이 꽤 괜찮은 광부이고, 기타 비슷한 악기인 '산투르'에 일가견이 있다고 소개하며 다짜고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나'는 조르바를 갈탄광 사업의 감독인으로 고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흔쾌히 동행하게 된다.

조르바는 오로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신경 쓰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 몰입했다. "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인간의 머리란 구멍가게 주인과 같은 거예요. 계속 장부에 적으며 계산을 해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가진 걸 몽땅 거는 일은 절대 없고 꼭 예비로 뭘 남겨둬요." 조르바는 기타 유사한 악기인 산투르 연주에 방해가 된다고 손가락 하나를 자르기도 했고 이미 결혼했으면서 크레타 섬에서 여인과 사랑을 하고 충동적으로 결혼식까지 했다. 최종적으로 조르바가 사랑했던 여인은 죽었고 갈탄광 사업은 망했다.

사업이 망한 데에는 조르바의 지분이 상당히 있었지만 조르바는 사업이 종국적으로 쫄딱 망한 당일에 바닷가에서 실컷 술을 마시고 양고기를 뜯고 춤을 추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는데. 다들 좋은 책이라고, 감동적인 책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번 독서모임에서는 할 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독서모임 당일, 이날 따라 책을 들고 앉은 변호사님들의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다들 '나만 이상한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이었다. 한 변호사님이 포문을 열었다. "저는 조르바 같은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아요."

"이 책에서 조르바가 지은 죄는 한두 개가 아니에요. 단순 벌금 사안이 아닌 것도 있어요." 다들 조르바에 대해서 성토하기 시작했다. 조르바가 가정을 버리고 무작정 섬으로 떠난 점.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고용관계를 맺고 계획 없이 행동하는 것, 결혼도 했으면서 또 결혼식을 올리고 이 여자 저 여자와 만나는 것, 사업주의 돈을 횡령한 것을 비롯하여 본능에만 충실하고 무계획, 무책임하다는 점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국선전담 변호사인 우리는 억울한 피고인도 만나지만 억울할 것 없는 피고인도 자주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매 순간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했다가 처벌받는 모습과 후회하는 모습, 수습되지 않는 사건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린 이 독서모임 날 업무적인 애로사항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조금 더 깊이 음미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쉬움을 가진 채 헤어졌다.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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