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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사는 곳이 계급인 나라 <1> ‘나의 주소’가 신분이 되었다

2026-03-08 21:29

어디에 사느냐가 ‘계층’ 상징하는 지표 돼 버린 현실
대구, 소득은 전국 평균 밑돌고 부채비율은 전국 웃돌아
전문가들 “격차 더해질 것…기회 불평등 해소돼야”

<그래픽=생성형 AI>

<그래픽=생성형 AI>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면서 '어디에 사는가'가 개인의 기회와 소득, 나아가 사회적 지위까지 결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수도권 집중은 단순한 인구 편중을 넘어 교육·취업·주거·문화 전반에 걸친 '기회의 편중'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장이 더딘 비수도권은 인구 감소, 산업기반 약화, 청년 유출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고, 이것이 다시 성장동력 위축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 사이 '사는 곳'은 하나의 계층을 상징하는 지표가 됐다.


이에 영남일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공간적 계급화' 현상을 살펴보고, 이로 인한 정치·경제·사회·의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해법과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비수도권에서 산다는 것


올해 만 나이로 50세인 A씨는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졸업 후 그는 다시 대구로 내려와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렸다. 지난 20년간 지역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며 부장 직급까지 오른 그는 아내와 맞벌이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 동창들과 만나는 것이 꺼려지고 괜히 움츠러드는 자신을 보게 됐다. 그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동창은 2000년대 초쯤 서울 마포에 있는 77㎡(23평) 작은 아파트를 좀 무리해서 사더니 이후 시세차익을 통해 평수를 조금씩 넓혀 나갔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과 비교하면 집값만 수십억원 넘게 차이가 난다"며 씁쓸해 했다.


거주지 선택도, 직장 선택도 분명 개인의 결정이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일자리·교육·문화 환경을 좇아 수도권을 택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지역에 남기도 했다. 그러나 비수도권을 선택한 대가는 가혹했다. A씨는 무엇보다도 자녀세대를 걱정했다. 고교생 자녀의 입시를 준비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절정에 달했다는 것. 그는 "서울 대치동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고급 입시정보나 세분화한 학원 커리큘럼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는 걸 느꼈다"며 "결국 자녀세대까지 출발선이 달라지는 것 같아 부모로서 자괴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비수도권의 삶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지역 소득 통계에 따르면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3천137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1인당 개인소득은 2023년 기준 대구가 2천376만원으로, 서울의 2천937만원과 비교하면 561만원 차이가 난다. A씨는 "서울 친구들은 '이제 은퇴하고 고향으로 가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지방이 여유롭게 보이나 보다. 나는 평생 치열하게 버티며 살아온 곳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평균 자산은 더 '비극적'이다. 대구 가구의 평균 자산은 서울 가구보다 적지만 부채비율은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데이터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23년 3월 말 기준 대구 가구의 평균 자산은 4억2천523만원이다. 이는 전국 가구의 평균 자산(5억2천727만원)보다 무려 1억원 넘게 적다. 반면 같은 기간 대구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19.4%로 전국 평균(17.4%)보다 2.0%포인트 높다. 또 대구 가구의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81.3%로 전국(75.7%)보다 5.6%포인트 높았다.


<그래픽=생성형 AI>

<그래픽=생성형 AI>

◆그러니 청년인구가 떠나가는 것


대구의 청년인구 감소 비중도 눈에 띈다. 동북지방데이터청에 따르면 2023년 대구의 19~39세 청년인구는 2015년 대비 17.1% 감소한 58만5천명이다. 대구의 총인구 대비 청년인구 비중(24.6%)은 수도권(28.3%)보다 3.7%포인트 낮았다.


대구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추세다. 일자리도, 임금도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2023년 대구 청년의 고용률(64.5%)은 수도권 청년(70.5%)에 비해 6.0%포인트 낮고, 2015년 대비 그 격차는 더 커졌다. 취업자의 300만원 이상 임금 비율(34.4%)과 상용근로자 비중(68.9%) 역시 수도권보다 각각 13.1%포인트, 3.4%포인트 낮았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 대기업·IT기업 수도권 집중, 임금수준 격차, 문화·생활 인프라 선호 변화 등으로 특히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앞두고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대구 청년들의 수도권 순유출은 7천858명으로, 2015년보다 2천774명이나 급증했다. 대구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주된 이유로 직업·교육·주택을 꼽았다.


◆중장년들의 삶이라고 다를까


대구 한 공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B(69)씨는 나름대로 '성공한 지역민'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아내의 몸이 나빠지면서 평생을 일궈온 대구에서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 성(城)'이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아내에게 큰 병의 징후가 나타나자 주위에서 병원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해 10년 가까이 서울의 대형병원을 정기적으로 오가고 있다"며 "3~5분, 길어야 10분 진료받으려고 길바닥에 쏟아붓는 시간과 비용은 생존을 위한 세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다고 주거지를 서울로 옮길 처지도 못 된다. 그는 "노모가 대구에 계신다. 이 나이쯤 되면 서울 가서 사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게 된다"고 했다.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B씨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대구 중장년층은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제적 수준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북지방데이터청이 발표한 2023년 기준 대구 자산·부채·소득·연금현황 자료를 보면, 중장년층(40~64세)은 소득, 주택 소유, 대출 등 대부분 지표에서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대구 중장년층의 '소득 있음' 비율은 76.2%로, 전국의 중장년층 '소득 있음' 비율(78.9%)보다 낮았다. 소득 구간별로 보면 1천만원 미만, 1천만~3천만원 구간을 제외하고 3천만원부터 1억원 이상 전 구간에서 모두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주택자산가액 3억원 이상 비중도 전국 평균(35.3%)보다 10.5%포인트나 낮다.


2022년 말 기준 대구 중장년층 96만2천명 중 55.3%(53만2천명)는 대출을 갖고 있다. 대구 전체 '대출 있음' 비율 43.6%보다 11.7%포인트 높고, 전국 전체 '대출 있음' 비율 45.8%보다도 훨씬 높다. 대출잔액 구간을 보면 1억~2억원 구간이 18%로 가장 많았고, 3억원 이상은 12.5%였다. 대구 대출잔액 1억원 이상 비중은 35.1%로 전국 평균(33.7%)보다 1.4%포인트 높았다. 대구 중장년층의 1억원 이상 비중은 39.4%로 노년층(29.8%)·청년층(28.8%)을 크게 앞질렀다.


◆전문가들 "격차 갈수록 더해질 것"


전문가들은 지역 불균형이 단순한 경제 격차를 넘어 삶의 질 격차로 고착되고 있는 만큼 기회의 불평등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에 실질적인 자율성과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고 했다. 경북대 하혜수 교수(행정학)는 "일자리·의료·교육·문화 기회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상황에서 개별 지자체 단위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권역으로 통합해 재정과 규제 권한을 확보해야 중앙정부와의 협상력도 높아진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라고 했다. 하 교수는 "TK통합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산업 전략과 세제, 인프라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수단이다. 권역 단위의 자율성과 권한이 확대될 때 기업 유치와 산업 재편, 공항·항만 등 핵심 인프라 육성도 보다 전략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수도권 일극 구조에 맞서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서울 집중'이라는 견고한 문화를 해체하지 못하면 수도권 쏠림과 공간의 계급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경북대 김태운 교수(행정학)는 "서울의 대학과 대기업이라는 실질적 자본과 기회가 이동하지 않는 한, 공간계급의 우상향 곡선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구조적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공간계급'의 우상향 곡선은 경제적 비용과 삶의 질 저하라는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서울에서의 삶이 기대보다 공허하고, 그 유지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는 '정체의 시간'이 20년 뒤일지 100년 뒤일지는 알 수 없다. 민간 영역의 변화 없이, 즉 서울의 대학과 대기업이라는 실질적인 자본과 기회가 이동하지 않는 한 공간의 계급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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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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