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
하계올림픽을 화려하게 치러 '국가적 영광의 순간'을 맞으려했던 프랑스인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막을 15시간여 앞둔 지난 26일 새벽 고속철도 테제베 노선 중 세 군데서 방화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북부의 릴, 서부의 보르도, 동부의 스트라스부르와 파리를 잇는 간선노선이며 발화지점은 다 파리에서 100㎞ 바깥이라 경계가 느슨한 곳이었다. 베르지니에 있었던 네 번째 방화시도는 발각되었다. 선로반원들이 일상점검을 하러 가니 수상한 사람들이 방화하려다 말고 도망가고 있었다.
프랑스 철도는 총연장 2만8천㎞에 매일 출발하는 열차가 1만5천편이나 된다. 철로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지만 너무 광범위하여 험한 지형에는 소홀한 구석이 있다. 이번 방화는 이런 허점을 노렸다. 테제베 노선에는 신호 및 안전용 케이블이 깔려 있는데 그 안에는 수십 내지 수백 가닥 광섬유가 들어 있다. 방화범들이 이것을 자르고 불태웠다. 철도 내부정보를 잘 아는 자들이 '급소'를 타격한 것이리라. 이것을 수리하고 다시 이어 시험까지 하려면 7월29일까지는 정상화가 어렵다. 올림픽개막을 보려거나 여름휴가를 떠나려던 승객 100만명이 발이 묶였다. 철도망에 최대한의 타격을 가한 셈이다.
이 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없으나 이 방화를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집단도 없다. 파리와 대도시 사이에 운행하는 열차는 서행하거니 운행취소를 해야 했다. 런던을 잇는 유로스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런던발 파리행 열차가 75분이나 연발하는가 하면 28일까지는 열차편수를 25% 줄여야 했다. 영국 스타머 총리도 개막식에 기차로 가려 했으나 항공편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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