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비극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인기 반영
대구시티 투어 특별 기획코스 ‘충절의 길 역사기행’
육신사부터 단종 시신 수습한 엄흥도 유적지 등 방문
지난 14일 오후 대구시티투어 '충절의 길 역사기행' 참가자들이 엄흥도(배우 유해진) 등신대를 지나 영월 엄씨의 재실인 망월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구경모기자
지난 14일 오전 8시30분쯤 동대구역 대구시티투어 승강장. 대구시티투어 참가자들이 안내문을 확인하며 관광버스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단종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을 계기로 특별 기획된 시티투어 단일 코스 '충절의 길 역사기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투어 코스는 총 5개. '왕과 함께한 사람들'을 주제로 '육신사~하목정~점심(다슬기탕)~엄홍도 묘소~엄홍도 후손마을'로 짜여졌다. 시티투어 참가자 정숙희(여·52)씨는 "영화를 보고 나니 단종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며 "대구에 직접적인 유적이 있다고 하니 바로 투어를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대구시티투어 '충절의 길 역사기행' 참가자들이 육신사에 봉안돼 있는 사육신(死六臣)애개 향을 피워 인사를 올리고 있다. 구경모기자
이날 시티투어 첫 목적지는 달성군 하빈면의 '육신사'였다. 육신사는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음을 맞은 성삼문과 박팽년 등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이다.
사당 앞에 선 송은석 해설사(대구유교문화연구소장)는 육신사의 역사적 배경과 공간적 의미를 차례로 설명했다. 육신사는 사육신의 결단을 보여주는 장소이자, 영화의 소재가 되는 단종의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되짚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육신사를 둘러본 참가자들은 다음 목적지인 하목정(달성군 하빈면·보물 2503호)으로 향했다. 단종 역사와 별개로 왕과 함께한 사람들이란 주제에 맞춘 코스였다. 하목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이종문이 세운 정자다. 인조가 머물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낮은 처마와 마루, 정자 너머로 펼쳐진 모습은 육신사의 비장함과는 다른 고요함을 담고 있었다.
'충절의 길 역사기행' 점심메뉴로 제공된 다슬기탕과 비빔밥. 구경모기자
하목정을 나온 뒤에는 점심 일정이 이어졌다. 이날 메뉴는 다슬기탕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 영화에서도 인상적으로 구현된 음식이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식음을 전폐하다 처음 숟가락을 들게 된 음식이 다슬기탕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구시티투어 '충절의 길 역사기행' 참가자들이 '충의공' 엄흥도 묘소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 있다. 구경모기자
식사 이후, 오후 일정엔 '충의공'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이후의 삶을 따라가 봤다. 영화로 다뤄진 단종의 붕어 이후 엄흥도는 '멸문'을 막기 위해 고향 영월을 등지고 몸을 피해야 했다. 엄흥도가 여생을 보낸 곳은 지금의 대구 군위 화본리였다. 그래서 이 일대엔 묘소와 망월정, 영월 엄씨 집성촌 등 엄흥도의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날 직접 본 엄흥도 묘소는 비교적 잘 보존돼 있었다. 봉분과 주변 공간의 단정한 모습이 눈에 띄었고, 묘역 정면은 팔공산 능선을 북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구조였다. 송 해설사는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위해 앞에 섰던 인물들이라면, 엄흥도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마지막 도리를 다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송 해설사의 설명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묘소 앞에 잠시 멈춘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엄흥도의 넋을 기렸다.
엄흥도의 직계 20세손 후손인 엄근수(영월엄씨 32세손)씨가 재실 안에 모셔진 '충의공 엄흥도' 초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경모 기자
시티투어 코스의 마지막 종착지인 금양리 영월 엄씨 집성촌엔 갑작스럽게 고향을 떠나야 했던 엄흥도와 후손 모두 영월을 그리워한 흔적이 묻어났다. 그 중에서도 '영월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월정이 마을을 대표하는 역사적 유산으로 통했다. 망월정 안에 지금도 엄흥도의 초상화가 걸려 있을 정도다. 송 해설사는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후의 삶과 후손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군위 금양·화본리는 그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공간이다. 역사적 가치에 비해 보존과 활용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역사기행 같은 관광 콘텐츠를 장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구정책연구원 김기완 박사(관광학)는 "이번 역사기행 기획은 지역 내 잊혀져 가고 있던 역사 자원을 사회적 이슈와 연계시켜 관광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로 꼽힌다"며 "지역 내 유적들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체계적인 보존·활용 방안을 통한 '공간적·위상적 지위 상향'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경모(대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