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TV문학관에 방영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KBS 제공>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 저자 故 조세희 작가(1942~2022)는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난쏘공은 그의 연작소설집으로 1978년 6월5일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나왔다. 이 책은 한국 문학 최초로 300쇄 돌파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낳은 국민 소설이다. 세상이 나온 지 4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읽히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 진행되던 시대
재개발지구 노동자 가족 그려
칼의 시대 펜으로 저항한 작가
"나의 문학은 존엄 지키는 무기"
소설 속 자본과 권력의 부도덕
사회 불평등이란 구조적 문제
출간 46년 지난 지금도 진행형
'당분간 지기만 하는 싸움에도
우린 최선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노트 속 문장은 울림 여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정비사업이 인가된 2021년 3월4일 마을의 모습. 연합뉴스 |
난쏘공은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도 미학적 요소를 더한 한국 문학사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품이다. 당대 사회를 날카롭게 조명하는 동시에 단문의 사용 반복, 시간 중첩, 환상적 상황 설정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많은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1942년 경기 가평에서 태어난 조세희 작가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돛대 없는 장선'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1965년 등단했다. 이후 소설을 쓰지 않고 오랜 공백기를 가지다 난쏘공을 출간했다. 이를 통해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송경동 시인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문학을 고귀한 생명의 사회적·역사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몇몇 글에서 표현했듯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저항을 준비했다. 당대 약자들의 분노와 설움을 적었다. 난쏘공은 그렇게 태어났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중략)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작중 배경은 산업화·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70년대다. 소설은 소외된 계층의 삶을 대표하는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난장이와 그의 가족은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과 철거,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여기서 난장이의 왜소한 신체는 단순한 개인적 특징이 아니다. 거대한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고 왜소화된 '작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옥상망루가 화염에 휩싸이자 지켜보던 철거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살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렌즈를 지키는 일이야." 난장이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한다. 달나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벽돌공장 굴뚝 속으로 죽는다. 그의 고통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조세희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읽히지 않는 사회를 바랐다. 하지만 난쏘공은 지금 봐도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2007년 난쏘공으로 연극을 만든 채윤일 연출가는 "민주화가 되면 빈익빈 부익부 상황이 개선될 줄 알았는데 민주화와 먹고사는 문제는 관계가 없더라"며 오늘날의 시각에서 봐도 그다지 옛날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도 유효한 조세희의 질문
2022년 12월25일 작가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시민이 작가가 말한 부조리한 현실이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빈소를 찾았다. SNS에는 책과 관련한 회고담들이 올라왔다. 1970년대 대학생이었다는 한 학자는 대학언론에 '조세희론'을 발표했다가 신문이 당국에 압수당할 위기에 처했던 일을 회상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책을 읽고 "사회의식과 실천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며 "조세희 선생님이 꿈꾼 세상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아 있다"고 추모글을 올렸다. 나만의 한 문장을 찾아 공유하며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도 많았다.
난쏘공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은 1970년대를 사는 빈민 난장이의 삶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과 파렴치한 악덕업자, 권력의 부도덕,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통렬하게 비판한다. 시민들은 저마다의 삶을 투영하며 소외당하고 핍박받는 모든 이를 떠올린다고 했다.
경북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김모(27)씨는 "지금까지 난쏘공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2024년에도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난장이와 유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 박상혁(32)씨도 "과거에 비해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역사는 진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또래 노동자가 산재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냥 그렇지만 않다고 느꼈다. 겉으로는 살기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어디든 억압받는 이들은 존재한다"고 했다.
최근엔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SNS 등에 행동을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면서 조세희 작가의 말도 함께 공유됐다. 2008년 조세희 작가의 문학세계를 되짚어보는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헌정식 및 낭독회에서 행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사람들을 향해 외친 말이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후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본들은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갑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김유빈(22)씨는 학부 동기들과 '우리들의 문학은 침묵하지 않는다'는 문구의 깃발을 들고 지난 14일 대구 중구 2·28기념공원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김씨는 "소설에서만 봐온 난쏘공의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니 두려웠다.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문학인들은 난쏘공을 두고 과거의 소설이 아닌 '미래의 소설'이라 평한다. 백가흠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작가는 과거를 봄으로써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자라고 푸슈킨은 말했다. 조세희 선생의 난쏘공은 앞의 명제를 완벽하게 증언하는 책"이라며 "도시에 깃든 소시민의 애달픈 삶, 개발로 인해 외곽으로 자꾸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이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분간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세희 작가는 작업 노트 어느 구석에 이 문장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지기만 하는 싸움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돛대 없는 장선' 등단
1975년 난장이 연작 첫 작품 '칼날' 발표
1978년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
1997년 계간 '당대비평' 편집인
1999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