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 부정하는 새로운 질문
세상을 다르게 보는 힘에 공감
소송 통해 간접 경험하고 배운
다양한 인생철학을 잘 묶어내
人相 디자인해주는 삶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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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듣도 보도 못한 '인상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 설 명절은 다이어트에 치명적이다. 뱃속보다는 머리를 채우며 허기를 달래고자, 두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전에 한 번씩 본 것들이지만 긴 연휴는 행간의 의미까지 몰입할 여유를 선물했다. 모두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넓고 깊게 보인다는 것이다.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이다. 익숙함과 이별하고, 두려움과 동행하는 일이다. 작년 여름 해외 출장 중 비행기 안 모니터에서 한양대 유영만 교수의 강연을 발견했다. 본인을 지식생태학자로 소개하는 신선함이 호기심을 자극해서 클릭했는데, 5부작을 연이어 시청할 정도로 빠져들었다.
머릿속을 맴도는 주옥같은 언어들이 바쁜 일상으로 흐릿해질 즘, 국내 1호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대표께서 그의 저서인 '언어를 디자인하라'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우연하게도 유영만 교수와 공저였다. 두 분을 함께 만나고 싶다고 연락했다. "당연함을 부정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 생각이 바뀐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와 같은, 활자화된 책 속의 화두를 저자들과 대화하며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드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하나의 자극은 성신여대 법학부 이재훈 교수의 저서 '그림 따지는 변호사'였다. 기계항공공학을 전공한 후 로펌과 기업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대학교수가 된 특별한 변호사이다. 규율에 기반한 유연성이라는 자기 철학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가 요청한 신간의 추천글을 쓰기 위해 미리 보내준 원고를 읽으면서 공자가 느꼈을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시공을 초월하며 공감했다.
이재훈 교수는 전혀 융합되지 않을 것 같은 클래식 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들과 법률을 멋지게 엮어냈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은 클림트의 삶과 작품들에서 사실혼의 법률관계를 뽑아내고, 양육비 청구와 배드 파더스까지 연결한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직관하면서도 멋있다와 화려하다만 떠올렸던 법조 선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하여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팀 밀란츠 감독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석탄을 팔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빌 펄롱은 관점을 바꾸는 일에 용기를 내었다. 최소한 평범하게는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석탄을 납품하던 막달레나 수녀원에 수용된 미혼모 세라를 만나면서 고난이 예상되는 길에 들어선다.
주인공 펄롱은 왜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받았던 윌슨 부인의 따뜻한 배려가 그의 혈관 속을 흐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세라의 입장으로 관점을 변경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석탄 묻은 손을 깨끗이 닦고서 세라의 손을 잡고 이끌던 배우 킬리언 머피의 따뜻한 미소가 아일랜드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일순간에 덮어 주는 느낌이다. 위와 같은 경험은 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되었다. 변호사니 교수니 하는 틀을 벗어나 인상을 디자인해주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한문으로 사람 얼굴 생김새를 말하는 인상(人相)과 인생상담(人生相談)의 준말은 같다.
변호사로서 소송을 통해 수많은 인생을 간접 경험하였다. 50대 중반에 편입한 대학에서 얼굴경영학을 공부했다. 사람 좋아하는 천성 덕분에 많은 만남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인생 철학을 배웠다. 이를 잘 묶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딱 환갑이 된 시점에 새롭게 세상을 살 기회가 주어졌음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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